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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세금내고 돈 바로 갚고, 셋째가 사회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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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숙 칼럼] 세금내고 돈 바로 갚고, 셋째가 사회환원

입력
2006.04.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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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최근 사업을 접었다. 어음 때문에 더 이상 버텨볼 수가 없더라고 했다. 그는 대형 의류업체의 생산하청업체에 소품을 대는 재하청일을 했다. 일단은 의류업계의 생산주문 자체가 싼 시장을 찾아 중국이나 동남아로 가는 추세에서 일거리를 찾기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것은 하청업체와 재하청업체로 손해를 떠넘기는 한국사회의 사업관행 때문이었다. 어음이 바로 그 척도였다. 그가 원청회사에 납품을 하고 받은 어음은 9개월짜리였다. 9개월후에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당장 돈이 급하면 사채업체에 할인을 해서 현금화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떨어져 나가는 돈이 너무 아까워서 9개월을 꼬박 기다리다 보면 그 사이 들어가는 돈은 은행이든 주변에서든 꿔야 했다. 물건 대주고 9개월간 버틸 금융비용을 부담하다 보면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더더욱 고약한 것은 이 같은 불평등 어음을 바로잡을 길조차 막혀있다는 사실이다.

어음 횡포에 납품업체 일 접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3개월이 넘는 어음을 단속한다는 사실을 아는 원청사에서는 이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는 일을 맡긴다고 했다. 아니 굳이 각서를 받지 않아도 계속 주문을 맡으려면 울며 겨자먹기로 불평등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몇 년을 참아오다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서 사업을 접는다고 했다. 사업을 접는 마당에야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업계에서 9개월짜리 어음이 등장한 것이 이미 작년이라고 했다. 이것은 비단 의류업계에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고 개월 숫자만 차이가 있을 뿐 대부분의 하청업체와 대형유통업체에 물건을 대는 납품업체들이 겪는 일이다.

현대ㆍ기아차 그룹이 검찰의 수사로 비자금 전모가 밝혀지기에 이르자 모두 1조원 규모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며칠 전에는 외환은행의 소유주인 론스타금융그룹이 은행매각과 관련한 탈세문제가 번져가자 1,000억원을 사회환원하겠다고 밝혔다. 모두 삼성이 8,000억원을 사회환원하겠다고 밝힌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계획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삼성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놓쳐버린 여론의 흐름을 읽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쯤 되고 보면 모두가 제정신이 들게 마련이라, 도대체 이것이 일의 순서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우선은 불법적인 일을 얼마나 저질렀는지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는 것이 첫째가 되어야 할 것이고 그 다음에 불법으로 빼돌린 세금을 먼저 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여기까지는 탈법의 문제이니 반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사회환원보다 더 시급한 것이 하청기업에 부담을 주는 관행을 바로잡는 일이다. 물론 삼성이나 현대ㆍ기아자동차 같은 대기업에서 직접 하청을 받는 업체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조건이라는 점은 안다. 동시에 달러화 약세와 고유가 추세에 두 회사가 부품회사에 단가를 낮춰달라는 요구를 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대기업이 하청업체에 부담을 주면 그 부담은 다시 재하청업체로 내려가고 그 결과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큰 짐을 지게 된다. 삼성이나 현대차가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돈에는 이런 구조를 활용해서 올린 수익이 들어있다. 이런 구조를 생각하면 매년 분기마다 대기업들이 수조원대의 수익을 올렸다는 것을 극찬만 할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무조건 수익을 많이 내는 기업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건전하게 고용하는 효과를 내는가 하는 점으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사회환원 앞서 하청업체 돌보길

세금을 내고, 관련업체에 제 돈을 주고 그러고도 수익이 남으면 사회환원을 하지 않고 맘대로 쓴다 한들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이미 수많은 종업원들과 하청업체의 종사자들을 먹여 살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사회환원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건전한 사회환원이 자리잡도록 정부 당국에서 납품에 얽힌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일도 필요하다. 그래야 수치로는 경제가 좋은데 사람들은 왜 힘들다고 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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