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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번듯하게 키운 세 엄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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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번듯하게 키운 세 엄마의 만남

입력
2006.04.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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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당치도 않아요. 더불어 사는 것이죠.(우갑선)” “제 집착이었습니다.(박미경)” “아이의 선택이죠.(박미라)”

자식에게 드리운 장애와 편견을 극복하고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키워낸 엄마들에게 응당 써야 할 단어인데 당사자들은 ‘성공’이란 부추김을 애써 거부했다. 한마디 털어놓을 때마다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처럼 숱한 고난의 자리를 걸어왔을 텐데 당사자는 담담하다.

엄마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엄마는 이름이 없다. ‘누구의 엄마’라고 일러줘야 고개를 끄덕인다. 잊혀진 그들의 이름부터 돌려주자. 우갑선(51ㆍ‘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희아의 엄마), 박미경(49ㆍ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의 엄마), 박미라(49ㆍ서강대 컴퓨터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근무력증 김진석의 엄마).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14일 오후 그들이 한자리에 모여 가슴을 열어 보였다.

시작은 모두 억척이었다. 몸도 가누기 힘든 아이를 모진 매로 다뤘다. 우씨는 “난 악질이었다. 얼마나 때렸으면 희아가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겠느냐”고 고백했다. “아픈 아이 그만 좀 괴롭히라”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이 왜 없었을까. 사랑의 매였을 테지만 가족, 특히 아빠의 반대는 거대한 장벽이었다. “남편한테도 아이가 할 수 있다는 걸 못 보이면 세상과의 대결은 끝이다.”

매는 수단일 뿐 무엇보다 원칙을 세웠노라고 했다. 끝없는 대화, 자신의 처지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세상에 알리는 긍정적인 사고. 박미경씨는 “항상 좋은 말만 했다. ‘백만 불짜리 다리’등등의 칭찬은 아이에게 자신감을 줬다”고 했고, 박미라씨는 “작은 일 하나도 진석이와 상의했다”고 말했다.

장애를 지닌 자식을 이만큼 키웠으니 남들이 슈퍼맨이라도 되는 듯 여기지만 그건 모르는 얘기다. 엄마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여전히 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존재”라고 한 뒤 이 말은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는 위대하다.”

한시도 떼놓지 않던 자식은 집에 둔 채(형진이는 “엄마의 보디가드”라며 한사코 따라왔다고 한다) 오랜만에 곱게 단장하고 홀로 외출을 감행한 엄마들은 인터뷰 내내 “맞아요, 맞아!” 맞장구를 치며 울다가 웃었다. 바로 우리들 엄마의 모습이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이삭기자 hiro@hk.co.kr

■ 아이에 욕심 버려야…놀림 받아도 감사하라 가르쳐

여기 3명의 엄마가 있다. 우갑선(51ㆍ‘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 이희아씨의 엄마), 박미경(49ㆍ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배형진씨의 엄마), 박미라(49ㆍ서강대 컴퓨터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근무력증 환자 김진석씨의 엄마)씨. 이들은 장애를 지닌 자식을 억척스럽게 키워냈다. 세상은 그들을 “성공한 엄마” “위대한 엄마”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들은 “NO!”라고 답한다. 자식 교육에 얽힌 그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어봤다.

_처음 장애를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는가.

박미경=외모가 말짱해 처음엔 전혀 몰랐다. 눈맞춤이 안되고 말을 안 하는 정도였다. ‘장애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병원을 다녔는지 모른다. 첫 느낌은 ‘내가 열심히 하면 장애를 극복해 줄 수 있을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였다. 하지만 현실은 매정했다. 그냥 아이를 데리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게 마라토너 배형진을 만들었다.

우갑선=아이를 본 가족이 다 도망갔다. 기도했다. ‘하나님이 천하만물을 만드시고 참 보기 좋았다고 했는데 내 아이도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겠지요.’ 그때 소리가 들렸다. ‘생긴 모양이 다르다고 무시하지 마라.’ 얼른 일어나서 아기 손을 꺼내봤더니 손가락이 두개 달린 손이 튤립 꽃으로 보이더라. 생긴 모습이 어떻든 사랑이 있으면 자유가 있다.

박미라=초등학교 2학년 때까진 몰랐다. 근무력증이라는 것 외엔 정확한 병명도 나오지 않았다. 치료도 안될 뿐더러 고정된 장애가 아니라 퇴행성이었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고집이 생겼다.

_솔직히 묻겠다. 아이를 포기하거나 시설 등에 맡길 생각은 없었나.

우갑선=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당신 죄가 얼마나 많으면 저런 아이를 낳았느냐’고 수군거릴 때마다 장애아를 둔 다른 엄마들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래, 나라도 제대로 키워서 그런 소리를 듣지 않게 해야 겠다 싶었다.

박미경=도망치고 싶었다. 손을 내밀어도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다. 법정 스님의 ‘자기가 만든 실 타래는 자기가 풀어야 한다’는 말씀을 가슴에 담았다. 형진일 포기한다고 해도 내 삶이 달라지리라 여기지 않았다. 내가 살기 위해 매달렸다.

박미라=경제적으로 힘들었다. 머리가 혼란스럽고 어디서부터 가닥을 잡아야 할지 아뜩했다. 하지만 피하지 말고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_아이를 부모 입맛에 맞게 키웠다는 비판도 있다. 아이를 심하게 몰아세우지는 않았나.

우갑선=난 악질이다. 수없이 매를 들었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희아가 저런 엄마를 만나 고생한다’고 하겠는가. 아이 역시 엄마를 견뎌내는 게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아노를 택한 아이에게 기본을 잡아주는 게 필요했다. 인내심을 키워줘야 했다.

박미라=진석인 몸이 아픈 탓에 고집이 세다. 그때마다 매를 들었다. 하지만 늘 아이의 의사를 존중했다. 싫증 내는 건 시키지 않았다. 길잡이 역할만 했다. 욕심 같아선 의대에 보내고 싶었지만 강요하지 않았다. 엄마 입맛대로 하는 건 오히려 마이너스다.

박미경=나도 독했다.(웃음) 형진인 지능이 낮아서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를 다그쳤다. 하루종일 운동 스케줄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집착이었다. 하지만 당시엔 특수학교 교사도 ‘안 된다’고 하는 상황이었기에 오기가 생겼다.

_세상의 엄마는 아이에게 모든 걸 바친다. 하지만 결과는 다르다. 교육 노하우가 있는가

박미경=좋은 말만 해주려고 노력했다. 말이 씨가 되니까. ‘백만 불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라는 말은 앞이 깜깜한 상황에서 우리의 염원을 담아 만든 말이다.

우갑선=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네 모습을 보고 침묵하는 사람보다 ‘꽃게 손’ ‘귀신 손’이라고 놀리는 사람에게 감사하라고 가르쳤다. 놀리는 사람은 최소한 관심은 있는 거니까. 그 뒤 희아에게 친구가 많이 생겼다. 이제 누구와도 친구가 된다.

_사람들은 성공이라고 말한다. 다른 엄마들과 비교가 되기도 한다. 다른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우갑선=장애는 극복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다. 성공은 없다. 희아는 평생 손가락 4개로 살아가야 한다. 엄마들은 ‘희아는 손가락이 2개고 넌 5개인데 넌 뭐 하느냐’고 아이를 다그친다. 하지만 태어난 목적, 살아갈 이유는 각자 다른 법이다. 그런데 보통 엄마들은 아이를 모든 것에 능통한 슈퍼맨으로 키우길 원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진지하게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비교하지 마라.

박미경=영화가 뜨니까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아니다. 난 그저 아이의 문제 행동을 줄이고 싶었을 뿐이다. 지금도 나를 비우고 있다. 형진이가 운동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악기공장) 생활에 충실했으면 한다. 마라토너 형진이가 아닌 직장인 형진이가 자폐아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엄마는 기본적인 것만 배려해주면 된다.

박미라=결국 아이의 인생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키웠다. 남들은 명문대 간 아들을 뒀다고 부러워하지만 진석이인 머리가 좋은 대신 건강이 없다. 세상은 공평한 것 같다.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더라. 욕심내지 않고 아이 자체에 만족하면 된다. 아이가 길을 찾아간다.

진행 고찬유기자 jutdae@hk.co.kr정리 김이삭기자 hiro@hk.co.kr

● 김진석

김진석(25ㆍ지체장애 1급)씨는 10살 무렵부터 점차 근육이 굳어지는 난치병인 근무력증을 앓고 있다. 2000년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어머니 박미라씨가 휠체어를 밀며 도시락을 싸들고 등ㆍ하교는 물론 학교 생활을 뒷바라지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김씨는 올해 같은 대학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박씨는 아들 졸업식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그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아들과 캠퍼스 잔디에서 오붓하게 점심 도시락을 먹던"일상을 최고의 낭만으로 꼽는다.

● 배형진

배형진(24)씨는 발달장애(자폐)를 겪는 장애인이다. 어머니 박미경씨가 교육 차원에서 달리기를 가르쳤고, 배씨는 2001년 3시간 이내의 수준급 기록으로 마라톤 풀코스 도전에 성공했다. 이들 모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아톤'은 500만명의 관객을 동원, 자폐아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이바지했다.

또 평소 모자가 주고받던 "형진이 다리는 백만불 짜리 다리" "몸매는? 끝내줘요"같은 대사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배씨는 현재 악기 부품 조립회사에 다니며 사회 생활을 익히고 있다. 물론 요즘도 달리기에 열심이다.

● 이희아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이희아(21)씨는 선천성사지기형 1급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손가락은 물론 무릎 아래의 다리도 없다. 어머니 우갑선씨에 이끌려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매일 10시간 이상 연습, 1992년 전국학생음악대회에서 비장애인 학생들을 누르고 유치부 최우수상을 탔다.

이후 전국장애인예술대회 최우수상(93), 시드니장애인올림픽 축하연주(2000), 소프라노 조수미와 협연(2003) 등으로 실력을 인정 받았다. 한국재활복지대 멀티미디어음악과에 재학 중이며 국내 자선공연과 해외 순회연주회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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