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납북자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납북’ 용어 사용에 따른 북한의 보도 제한, 피랍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사망)의 남편 김영남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신원확인 발표 등. 한국 정부도 예전과는 달리 보다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난 달 ‘창조적 발상’을 언급한 데 이어, 11일 국회 답변에서 비용(경제적 지원)이 필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접근엔 ‘납북’의 본질이 간과돼 있다.
납북자들은 자기 의사에 반해 끌려간 사람으로 북한정권이 일으킨 납치테러의 산물이다. 이들은 지금 사지에서 원치 않는 강제억류의 생활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불법은 즉각 중단되고 당사자들은 원상회복돼야 한다. 따라서 납북은 자국민 보호와 범죄행위 시정 차원에서 다뤄야 마땅하다.
문제는 북한이 납북자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간 북한은 납북자는 단 한 명도 없고, 의거입북자만이 있다고 강변해 왔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피랍 당사자를 상대로 ‘납북’ 사실 여부를 가려내는 일이다. 조사는 외압이 없는 상태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행해져야 한다.
만일 납치행위가 있었음이 판명될 경우, 정부는 납북자의 무조건 송환은 물론, 책임 있는 북한 당국자의 사과, 납치범의 처벌, 재발방지 보장을 얻어내야 한다. 이 경우 사회간접시설(SOC) 건설 등 대규모 지원(범죄에 대한 보상)을 통한 송환 추진은 어불성설이다.
반면에 자진 월북한 자의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과 남쪽 가족들간의 분단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의거입북만 있다는 북한측 주장은 여러 객관적 증거와 정황에 비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정부는 독일의 ‘정치범 석방거래’ 방식, 곧 대규모의 현물지원을 통한 납북자 송환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석방된 정치범들은 동독 정권에 저항한 자였지 강제로 동독에 끌려간 자가 아니었다.
우리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엔 난점이 있다. 서독의 대동독 접근의 전반적 구도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더욱이 북핵 외에, 위폐ㆍ마약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대규모 지원은 한ㆍ미 공조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우리는 2000년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을 아무 조건 없이 북송했다. 또 지난 10년 가까이 상당한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북한에 제공해 왔다. 이른바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논리에서. 이제는 북한측이 성의를 보일 차례다.
물론 북한의 완고한 ‘납북자 부존재’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긴 어렵다. 그렇다고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편법을 쓰려 해선 안 된다. 정공법만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은 일본의 사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대규모 선 지원’을 통해 납북자 ‘송환’(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최대치)을 무리하게 추진하기보다는 가능한 것부터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가령 전면적 생사확인을 실시하고, 남쪽 가족들로 방북 상봉단을 구성해 납북자들과 재회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인도적 사업은 정부가 이미 매년 실시해 온 식량 차관과 비료지원과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이 옳다. 그런 지원도 결코 적지 않은 것이며, 또 공짜로 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납북자 문제는 본질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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