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이 2004년 9월부터 시작한 ‘11시 콘서트’. 월 1회 아침 11시, 로비에서 간단한 브런치를 제공하고 클래식을 들려준다. 오전 11시. 아침의 바쁜 일상에서 한숨 돌리고 오후를 생각해 보는, ‘하루의 블루 오션’이다. 그 동안 썩혀 두었던 그 시간대에서 황금 어장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들. 그런 자들에게 ‘공연 기획자’라는 팻말이 붙는다.
그들은 문화 권력자가 되려고도, 문화를 가르치려 하지도 않는다. 문화에 대한 요청이 점증해 가는 이 시대를 정확히 읽어내고, 그를 통해 최대한 증폭된 결과를 창출해 내려 한다.
더러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하고, 더러는 얄팍한 호주머니로 회귀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그들은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자본 사이에서, 자본을 창출할 가능성에 스스로를 걸었으니. ‘문화의 시대’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문화의 가능성을 이미 체감한 그들은 어쩌면 21세기에 가장 적합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 쪽 분야에서 통하는 금언 하나. “쉴 때 확실히 쉬자”는 것이다. 술자리와 야근은 기본이다. 보통 공연이 끝나는 밤 10시가 그들이 본격 작업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공연의 정리, 공연자들과 스탭들의 상태, 관객들의 반응 등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올빼미 생활에 쉬 피로가 쌓이기 일쑤인 그들은 육체와 감성의 이완이 불가결하다. 한 달에 쉬는 날이 무조건 1주일(7일)은 돼야 한다는 어떤 기획사의 철칙은 항상 깨어있는 감성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입증하는 예다.
그들, 공연 기획자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이 삶의 풍경을 바꿔 가고 있다. 일과 놀이의 벽이 엷어져 가는 21세기형 삶의 방식과 긴밀히 조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다른 노마드형 인간, 공연 기획자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보자.
장병욱기자 aje@hk.co.kr
■ 무대가 백조라면 기획자는 숨가쁜 '백조 다리'
기획자들은 5분 대기조다. 화려한 무대를 받쳐주는 것은 무대 기둥이 아니라, 기획자들이 펼치는 각고의 노력과 순발력이다. 그들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면 무대는 쓰러질 수밖에 없다.
국내 클래식 공연 사상 무대 뒤에서 벌어진 가장 극적이고 아찔한 사건은 2001년 예술의전당 초청 런던필 내한 공연일 것이다. 신장이 안 좋은 폴란드 태생의 독일인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가 이틀 공연 중 첫 날, 지휘를 마치고 쓰러졌다.
남편이 죽을까 봐 울음보를 터뜨리는 부인을 달래며 마주어를 병원으로 보낸 다음, 예술의전당 기획팀은 지휘자 찾기에 돌입했다. 하룻밤 사이에 런던필의 명성에 걸맞는 최고의 지휘자를 찾아 데려오지 못하면 둘째 날 공연을 취소해야 할 상황.
아시아권에 머물고 있는 유명 지휘자를 수소문한 끝에 일본에 와 있던 러시아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를 찾은 시각은 거의 자정 무렵. 테미르카노프는 일본 순회 일정 중 딱 하루가 비었다며 한국에서 지휘할 수 있다고 했다. 문제는 제 시간 안에 도착하는 일.
지휘자가 갑자기 바뀐 상황에서 제대로 공연을 하려면, 리허설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맞추려면 테미르카노프가 아침 9시 비행기를 타야 했다. 급히 비행기표는 끊었지만, 한국 입국 비자가 문제가 됐다. 오밤중에 비자를 발급 받기란 불가능한 일. 예술의전당 기획팀은 비자 담당 주일 영사에게 전화로 다급한 사정을 알리고 협조를 요청했다.
그 날 아침 7시, 테미르카노프는 영사관에 가서 직접 비자를 받고 드디어 입국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내의 다음 공연지로 짐을 몽땅 부쳐버려서 가방 하나 없이 달랑 빈 몸으로 들어 온 상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예술의전당은 급히 지휘봉과 연주복을 구했다. 지휘자 변경으로 연주 곡목도 바뀌면서 악보도 문제가 됐다.
다행히 런던필이 테미르카노프가 하려는 곡의 악보를 갖고 온 상태여서 해결됐다.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둘째 날 공연은 성공리에 끝났고, 마주어도 응급 치료를 잘 받아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기획팀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튿날 일본에서 공연해야 하는 테미르카노프의 일본 입국 비자를 받기 위해 밤새 다시 한 번 작전을 펼쳐야 했다.
기획 작업은 총체적 예술이다. 1998년, 악어컴퍼니를 만들어 이 일에 뛰어든 뒤 손꼽히는 기획자가 된 대표 조행덕 씨는 기획일을 우직한 육체 노동에 비긴다.
잦은 야근과 회식은 물론, 좋은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문제는 물론 사람들의 요구를 읽어 가며 작품을 업그레이드 하는 일까지, 엄청난 뚝심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 그는“자기 이름 걸고 좋은 무대를 만들려면 3~5년은 해봐야 한다”며 “후배 기획자들에게서 그런 근성과 지구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는 그만한 덕목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기획 작업은 통념을 거부해야 할 때도 많다. 공연계의 히트 상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는 뮤지컬 ‘아이 러브 유’는 뮤지컬계의 트렌드를 뒤집은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소극장 뮤지컬인데다 극적 요소마저 약한, 요즘 트렌드와는 한참 벗어난 작품이었지만 출연진의 탄탄한 연기력으로 승부를 건 것이 주효했다.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큰 성과를 거둔 ‘점프’도 기획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계 공연시장에 유행처럼 번진 ‘마셜 아츠’에 코메디라는 대중성을 가미한 것이 성공 비결이다.
기획자들은 말하지 않는다. 한 편의 무대가 거둔 성공과 환호, 또는 좌절을 뒤로 한 채 그들은 보다 나은 만남을 위해 길을 떠날 뿐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오미환기자 mhoh@hk.co.kr
■ 공연기획계 현실과 문제점
기획자들이 일하는 공연시장은 다른 분야에 비하면 구멍가게처럼 보인다. 예전에 비해 놀랄 만큼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최근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뮤지컬을 빼곤 국내 공연 시장은 아직 영세한 수준이다.
영화판과 비교하면 확 드러난다. 영화는 진작에 배우나 감독이 아닌 기획자 내지 프로듀서 중심으로 전환했고, 기획ㆍ제작ㆍ투자ㆍ배급이 각각의 전문영역으로 자리잡았다. 반면 공연기획자는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온갖 일을 하느라 정작 공연의 상품가치를 높이는 핵심 업무에는 충분히 매진하지 못할 때가 많다.
누구와 무슨 공연을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하고 진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포스터 찍고, 홍보하고, 표 팔고, 돈 끌어오고, 당일 현장에서 자잘한 뒷치닥거리 하고, 끝난 뒤 세금 떼고 정산하는 일까지 다 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다.
경력 9년의 한 공연기획자는 “속된 말로 기획자가 ‘멀티 시다바리’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며 “기획 영역의 세분화, 전문화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민간 기구에서 공연예술축제를 진행하는 동안 업무의 80%가 제작비 등 돈 구하러 다니고 영수증 처리하는 일이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기획적 상상력을 발휘하기란 무척 힘든 일”이라고 토로했다.
긍정적인 조짐도 보인다. 최근 문화산업으로 급성장 중인 뮤지컬이 좋은 예다.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뮤지컬은 이제 기획과 제작, 투자가 분리되어 나름의 영역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기획자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인식도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기획의 전문성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어 예술가나 예술단체에서는 기획자를 심부름꾼 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예술가ㆍ단체와 대등한 자격 또는 그 이상으로 ‘기획의 힘’을 인정하는 추세다.
국내 공연계에서 본격적인 기획의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8년 봄, 세종문화회관이 문을 열고 두 달 반 동안 축제를 펼치면서부터다. 세계 16개 국에서 40개 예술단체와 유명 예술가 800여 명을 초청한 대규모 국제행사였던 만큼 기획자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전까지는 언론사가 국내외 유명 예술가ㆍ단체의 공연을 주도했다.
88올림픽은 공연시장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 문화축전을 통해 철의 장벽 너머에 있던 구 소련 예술단이 처음 한국에 오고, 이탈리아의 라 스칼라 극장 오페라 등 최상급 공연이 봇물처럼 터지면서 공연기획에 대한 수요도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뒤 포화상태까지 갔던 기획사의 난립은 IMF 사태로 상당수 정리됐다.
현재 꾸준히 공연을 진행하는 국내 기획사는 연극ㆍ음악ㆍ무용 등 여러 장르를 합쳐 100개쯤 된다. 신뢰받는 굵직한 기획사는 몇 안되고 여전히 올망졸망 걸어가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공연기획자가 되려면
요즘 젊은이들은 공연기획에 관심이 많다. 예술의전당, LG아트센터, 크레디아 등이 기획 부문 신입사원을 뽑을 때 경쟁률은 50에서 100대 1에 이를 정도다.
현장 기획자들은 공연기획자의 자질로 한결같이 예술 분야 전공보다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폭넓은 인문학적 교양을 강조한다. 물론 공연을 좋아하는 마음, 무대를 보는 안목은 기본이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나 의욕만으로는 계속 할 수 없는 일이며 현실감각과 추진력, 창의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해까지 8년간 서울세계무용축제 기획실장으로 일하다 올해 서울예술단 기획PD로 자리를 옮긴 우연씨는 “기획자는 예술과 관객간 매개자, 조정자로서 크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며 “그러자면 특정 장르만 봐서는 곤란하며, 무대를 둘러싼 외부 환경과 사회 전반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기획자는 예술가와 예술단체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연의 사회적 효과와 의미를 재생산하는 제2의 창조자”라며 “기획적 상상력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현재 공연기획과 관련한 교육기관은 전국 10여 개 대학에 예술경영ㆍ예술행정ㆍ문화산업ㆍ극장경영ㆍ공연기획 등의 이름으로 설치된 대학원 과정이 있다. 학부 과정으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내 극장경영 전공이 유일하다.
공연기획자 가운데는 영국 런던의 시티대학, 미국 뉴욕대학 등에서 배운 유학파도 꽤 많다. 하지만 현장 실무자들은 학문적 이론보다 경험에 더 무게를 둔다. 작더라도 내실있는 기획사에서 경험을 쌓다가 필요할 때 이론을 공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충고다.
오미환기자
■ "흥행사이자 예술가"
공연기획사 ‘쇼노트’의 송한샘((32)이사는 지난 달 5박7일 일정으로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현지에서 공연 중이거나 기획중인 뮤지컬 가운데 국내 무대에 올릴만한 작품이 있는지 찾아보기 위한 출장이었다.
뮤지컬계의 이단아로 평가 받는 작곡가 겸 작가 스티브 손드하임의 최신작 ‘스위니 토드’를 비롯해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를 오가며 본 공연만 10편.
송 이사는 링컨센터에 자리잡은 뉴욕 퍼블릭 라이브러리에도 들러 2편의 공연 영상물을 감상하고 왔다. 여기에 시간을 쪼개고 쪼개 브로드웨이의 ‘큰 손’ 디즈니 씨어트리컬 관계자 등 현지의 작곡가, 프로듀서를 만나 작품과 사업 이야기를 나누었다.
송 이사는 요즘 공연계에서 주목 받고 있는 신진 프로듀서다. 지난해 송 이사가 처음 기획ㆍ제작을 맡은 ‘헤드윅’은 10만 관객을 모으며 소극장 뮤지컬 바람을 몰고 왔다.
3개월간의 앙코르 공연에서 거둔 순이익만 3억5,000만원. 지난해 7월 올림픽공원 체조 경기장에서 열린 ‘헤드윅 앤 앵그리 인치 콘서트’는 발매 8분만에 6,000장의 표가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뮤지컬 빅뱅 시대’라는 말이 떠도는 요즘이지만 소극장 뮤지컬이 이만한 성공을 거두기는 쉽지않다.
성공의 이면에는 땀과 열정이 있었다. 송 이사를 포함한 3명의 쇼노트 프로듀서는 2004년 5월 한국판 ‘헤드윅’ 제작을 결정하고 공연권을 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다른 두 기획사와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배우 오디션을 보고, 관객들을 위한 DVD시사회를 여는 등 이벤트도 함께 진행했다. 회의는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공연 중 퇴근시간은 빨라야 밤 11시30분이었다.
연세대 중문과를 다녔지만 송 이사는 늘 무대를 꿈꾸며 살아왔다. 대학시절 문예패 활동을 하며 직접 8곡을 작곡해 연출한 음악극을 학내에서 공연한 적이 있고, 재즈가수 윤희정씨를 사사해 2년간 재즈가수 활동을 하기도 했다.
졸업 후 L전자 해외마케팅부에서 근무하던 그는 “무대 위에 서지는 못해도, 무대 뒤에라도 있고 싶다”는 마음에 2001년 공연기획사 제미로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마케팅팀장, 프로덕션 매니저 등의 직함으로 ‘미녀와 야수’ ‘캐츠’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 등 굵직한 공연에 참여하며 현장 감각을 익혔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이 운영하는 문화예술원에서 공연 프로듀서 과정 강의도 하는 그는 프로듀서의 다재다능을 강조한다. “예술적인 감수성도 있어야 하지만,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등 전반적인 경영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공연이 막을 내리면 공연 제작과정 분석을 하고 사업 전반을 되돌아 본 뒤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비즈니스 마인드도 가져야 합니다.” 그는 인간 관계도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배우 연출자 등과 평소 친분을 쌓지 않으면 캐스팅과 제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듀서의 가장 큰 애로로 극장 대관을 꼽았다. 주요 공연장의 대관 규정이 까다로워서다. 지난 3월 일본 재즈그룹 ‘T-스퀘어’의 공연이 어그러졌을 때는 당혹스럽기만 했다. 대관 계약비 500만원이 아깝다기보다는 공연장측의 신뢰를 잃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송 이사는 “프로듀서의 삶은 외줄타기와 같다”고 말한다. 흥행성을 너무 생각하면 천박해지고, 지나치게 예술성에 치우치면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가야 하는 게 항상 큰 고민거리죠. 좋은 작품이 있어도 당장 사오지 못하는 것은 결국 흥행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정재옥, 관객 감동 중시…회원만 2만5,000명
국내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적인 기획사인 ‘크레디아’. 1994년 설립 이래 매년 30회 이상 국내외 주요 연주자의 무대를 마련하고 있고, 호암아트홀을 5년째 위탁 운영하고 있다.
정재옥(44) 대표는 그 같은 성공의 비결로 ‘관객의 신뢰’를 꼽았다. 오랜 세월 일관성 있게 수준 높은 공연을 제공함으로써 쌓은 탑이다. 크레디아는 2만5,000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고, 평생 회원도 2,000명이나 된다. 이들은 꾸준히 표를 사고 공연에 관한 입소문을 내는 등 크레디아의 원군이 되고있다.
정 대표는 중앙일보 문화사업부에서 10년 간 경험을 쌓은 뒤 독립해서 크레디아를 만들었다. 그 때까지 클래식 공연 기획은 대체로 연주자 위주였지만, 정 대표는 연주자와 관객, 스폰서를 잇는 중간자로서 모두에게 감동을 제공한다는 좀 더 적극적인 목표를 갖고 출발했다.
“공연은 연주자나 배우의 무대처럼 보이지만, 공연의 전체 색깔과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기획자의 몫입니다.“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정 대표는 공연계의 전망을 낙관적으로 본다. “흥미 위주로 빠르게 돌아가는 디지털 세상에서 공연 현장의 감동은 더 소중한 것이 될 수 밖에 없고, 국내 공연장과 각종 페스티벌이 늘어남에 따라 공연 기획에 대한 수요도 더욱 커질 겁니다.”
현재 크레디아는 연주자를 섭외하고 공연을 진행하는 공연팀, 기업을 상대로 문화마케팅을 하는 ‘시티 워커스’, 관객 서비스를 전담하는 ‘클럽 발코니’ 등 3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 오현실, 좋은 연극만 생각하는 뚝심의 기획자
연극기획사 ‘이다’ 오현실(37) 대표가 걷고 있는 행보는 국내 연극 기획의 역사나 진배 없다. 10년째 해 오고 있는 일도 그러려니와, 남편(손상원ㆍ36)마저 국내 최대 연극 기획사인 악어컴퍼니(대표 조행덕)의 이사로 있으니 국내 연극 기획의 증인으로서 손색 없다.
밥짓기설거지 등 바닥일에서 시작한 연극 작업이기에 그에게서는 무엇보다 실제의 힘이 느껴진다. 뮤지컬계의 유혹에도 마다하고 연극 기획에 역량을 집중해 온 뚝심의 소유자다.
직장을 그만 두고 문예진흥원 공연아카데미(5기) 등지에서 연극일을 배운 뒤,1999년 서울연극제의 개막작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바다의 여인’을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그의 본격적인 기획 이력은 출발했다. 작가 연출가 배우 등과의 끊임없는 접촉, 대관에서 계산서 작성까지, 그의 작업은 “어떻게든 돈을 줄이는 일”로 귀결된다.
오늘도 그는 관객들의 표정을 읽느라 여념이 없다. 더러 자신을 알아 보곤 “좋은 공연 보고 간다”며 인사해 올 때, 희열을 느낀다. 연극 만들기에 마음을 뺏긴 부모도 원망 않고 할머니 품에서 곱게 커주는 딸(6)이 고마울 따름이다. 쉬는 날 없이, 바쁠 때는 새벽 1시 퇴근도 밥 먹듯 하는 엄마다.
5월2일 돛을 올리는 제27회 서울연극제의 홍보를 담당한 운영위원이기도 하다. 홍보 작업을 해주기로 한 무대 의상 디자이너 이병복씨의 개인 전시회 일정(5월27~31일)까지 잡혔으니, 5월 한 달이 벌써 빠듯하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 설도윤, 브로드웨이 첫 진출한 간판 프로듀서
설도윤(47) 설앤컴퍼니 대표는 일반인에게도 많이 알려진 뮤지컬 프로듀서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등을 국내 무대에 처음 올렸고, 2002년에는 영화 ‘물랑루즈’의 감독 바즈 루어만이 연출한 ‘라보엠’으로 한국인 최초의 미국 브로드웨이 데뷔식도 치렀다. 창작 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 ‘쇼 코메디’ 등 그의 손을 거쳐간 뮤지컬은 14편이다.
한때 꽤 잘 나가는 배우였고 안무가로서도 인정 받던 그는 91년 SBS 안무 단장을 맡고 있을 때 ‘쟈주’로 뮤지컬 기획 제작에 뛰어들었다. 역할 분담이 불분명하고 열악하기만 한 뮤지컬 제작 환경을 바꿔보자는 생각에서였다. “한 기업의 CEO와 같으나 예술적 창조성도 함께 갖춰야 합니다. 투자자 확보도 중요하고요. 한때는 예술가가 돈 모으러 다닌다고 욕도 많이 먹었죠.”
그는 국내 대표적인 프로듀서의 자리에 올라선 비결을 ‘열정’이라는 단어로 설명했다. “작품 하나에 빠지면 미칠 듯이 분석하고 얼마나 잘 만들 것인가 고민을 하죠. 정말 제가 좋아해야 관객도 좋아하게 됩니다. 작품에 대한 열정이 가장 중요한 듯 해요.”
경북 대경대학 뮤지컬학과 교수로 공연 기획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설 대표는 5월 뉴욕 32번가에 사무실을 열고 브로드웨이에서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펼칠 계획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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