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연륜의 출판사인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의 ‘주인’이 바뀔 모양이다. 주식회사 문지의 최대주주가 바뀐다는 의미다. 이는 그간의 문지가 지향해온 ‘당대의 문학과 지성’이라는 내용의, 형식적 완성 혹은 완성을 향한 결정적인 변신이라 할 만하다.
문지는 최근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고 현 최대주주인 창립 동인(김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황인철 오생근)들의 주식 절반 가량을 젊은 3세대 동인(박혜경 우찬제 이광호 김동식 김태환 최성실)들에게 액면가(1만원)에 넘기기로 결의했다.
1세대들이 보유했던 2,800주(1인당) 가운데 1,300주씩을 이전키로 한 것이다. 2세대인 ‘문사’(문학과사회) 동인 가운데 1세대와 비슷한 지분을 가진 이들(이인성 정과리 홍정선씨 등)도 주식의 일부(500주)를 3세대에게 넘기기로 했다.
1975년 자본금 500만원을 갹출해 문을 열고 94년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한 이래 문지 경영의 내용과 형식을 좌우해 온 1세대가, 2000년 김병익(현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전 사장의 용퇴와 계간지 편집권 이양을 통해 경영의 내용 일부를 넘겨준 데 이어 법적(형식)인 이양도 매듭지은 것이다. 이로써 문지의 최대주주 지위는 2세대가 승계하게 됐다. 문지 김수영 주간은 “이제 단행본 기획회의 멤버도 1ㆍ2세대에서 2ㆍ3세대로 넘어가고 1세대 어른들은 출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김현씨가 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사에서 밝힌 것처럼, 문지는 동시대 작가에 대한 애정과 옹호를 자신들의 권리이자 의무라 믿었던 4ㆍ19세대 비평가들이 문학의 자유와 반(反)문화에 대한 저항이라는 정신을 공유하며 출범했다. 그것은 문지가 그 믿음과 정신을 공유하는 이들 모두의 것이라는 다짐이기도 했다.
‘지분 이양과 관련한 개인의 행위는 이사회의 결의에 대항하지 못한다’는 문지 정관의 문구와, “우리의 주식은 개인이 개인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세대가 세대에게 이양하는 것이라 믿는다”는 1세대들의 선언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김병익 씨는 “우리의 뜻을 이미 작고한 두 사람(김현 황인철)의 부인들도 흔쾌히 받아들여줬고, 2세대 후배들도 미래의 적당한 시점에 자신들의 지분을 후배 세대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했다”며 “승계의 전통이 만들어진 것 같아 미련이나 아쉬움보다 기쁨이 앞선다”고 말했다. 현재 300~500주씩을 가지고 있는 3세대 동인들은 2차에 걸쳐 주식을 인수, 최종적으로 2,300주 내외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자본주의 윤리에 역행하고 기업 관행에도 어긋나는 문지의 이 ‘승계의 전통’은, 비록 경쟁력의 핸디캡이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불화하는 문학의 자리에 사뭇 어울린다. 2세대 동인인 홍정선(인하대 국문) 교수는 “어른들이 우리 출판문화에 아름다운 풍경 하나를 또 남겨주신 셈”이라며 “이것이 문지의 장점이자 단점이지만, 우리는 그 단점마저 소중히 껴안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지 1~3세대 동인들은 해마다 4ㆍ19 즈음의 하루를 잡아 성묘하는 전통에 따라 14일 경기 양평의 김현 묘소와 안성의 황인철 묘소를 찾았고, 고인들에게 자신들의 이번 결정을 자랑하듯 알렸을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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