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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권자의 두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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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유권자의 두뇌

입력
2006.04.15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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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학자들은 2004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모습에 어떤 두뇌반응을 보이는지를 MRI 촬영을 통해 분석했다. 공화 민주당의 확실한 지지자들에게 부시 대통령과 케리 후보의 유세 모습을 보여주면서 인간의 감성과 이성을 각기 움직이는 뇌 부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모든 실험 대상자는 지지 후보의 모습을 보면 감성 부위가 활발하게 기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상대 후보의 모습에는 감정을 통제하는 이성 부위가 작동하는 것이 두드러졌다. 상대 후보를 의식적으로 싫어하려는 두뇌 작용으로 풀이됐다.

■ 좀더 복잡한 실험에서는 공화 민주 골수당원에게 두 후보의 정책발언 가운데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들을 차례로 들려주고 모순 여부를 평가하게 하면서 MRI로 뇌 움직임을 살폈다. 실험 대상자들은 한결같이 지지 후보의 명백한 모순점은 외면하면서 상대 후보의 모순은 쉽게 가려냈다.

이 과정에서 지지 후보 발언을 검증할 때는 이성적 판단을 하는 뇌 부위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 느낌을 갖더라도 애써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 호감을 갖는 것으로 추정됐다. 중독자들이 마약 주사를 맞을 때의 의식 작용과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 이런 연구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의사결정이 흔히 이성보다 감성에 지배된다는 통념을 확인하게 한다. 특히 정파적 신념이 석회처럼 굳어진 유권자들은 어떤 새로운 정보도 무시한 채 편향된 결정을 한다는 것을 의학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미국이든 한국이든 정치세력이 유권자의 이성에 호소하는 정책대결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캠페인에 매달리는 것을 마냥 나무라기도 어렵다. 유권자들의 뇌가 그렇게 움직인다는데야 달리 어쩔 도리가 있을까 싶은 것이다. 감성이 유난히 발달했다는 우리에게 감성 정치는 숙명일 수도 있겠다.

■ 그러나 감성 캠페인이 마약 주사처럼 유권자들이 현실의 문제를 잊은 채 몽롱한 환각에 취하도록 한다는 지적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현안에 대한 이성적 토론이 실종되는 것은

무엇보다 사회에 불행한 일이지만, 감성 정치에 의존하는 정치세력에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인물과 정책에 대한 관심과 지지를 넓히는 효과를 기대할지 모르나, 이미 제 편에 선 유권자의 편향된 신념을 굳히는 데 그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세력이 서로 감성 캠페인으로 맞서다 보면 양쪽 모두 중원을 장악하기보다 변방에 웅크린 채 목소리만 키우는 꼴이 될 수 있다. 변화와 개혁을 외치는 세력일수록 스스로 경계해야 옳을 듯 하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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