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때문에 목이 껄껄하다고 다들 난리다. 공기가 맑지 않거나 먼지를 많이 들이켠 날에는 돼지고기가 인기. 돼지고기의 불포화 지방산이 중금속 성분을 흡착하여 몸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알려져 있어서다. 의학적으로 맞다, 아니다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황사나 먼지 핑계를 대면서 고기 한 점 먹고, 또 소주 한 잔 곁들이다 보면 중금속은 둘째고 기분이라도 풀리겠다.
삼겹살구이와 같은 직화 요리가 아니어도 경상도식으로 말아낸 돼지국밥이나 이북식 돼지 편육 등 기호에 맞춰 고를 수 있으니 선택의 폭도 넓다. 봄철 손실되는 체력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게다가 체내의 먼지를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으면 더 좋으니 돼지고기 한 근을 귀가 길에 챙겨보자.
▲ 와인향기 돼지고기
프랑스 요리 가운데 가장 뜻밖의 메뉴는 아마도 돼지 족발일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가장 멋쟁이 동네라는 쌩 제르멩 데 프레에는 오래도록 문인들이나 정치하는 양반들이 자주 들락거려 왔다는 레스토랑 ‘립(Lipp)'이 있다.
멋쟁이 노(老)교수나 잘 빼입은 일본 관광객들로 북적대는 이곳의 단골 메뉴는 바로 ‘족발’. 밤 10시에 들러도 사람들은 와인 한 잔을 곁에 두고 족발을 썰고 있다. 파리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24시간 레스토랑의 대표 메뉴도 족발인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족발 한 접시를 앞에 두고 새벽장사를 나왔던 상인들이나 밤새 클럽을 전전하던 젊은이들이 한데 섞여 벅적거린다.
코르셋으로 조인 드레스에나 어울릴 거창한 프랑스 정찬보다 훨씬 실리적이고 현실적인 프랑스 일상식단에는 이처럼 꼭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돼지저금통 만하게 덩어리로 썬 돼지고기를 깊숙이 칼집을 낸 후, 말린 자두나 살구와 같은 달콤한 과일을 넣어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는 돼지고기 좋아하는 폴란드 사람들도 애용하는 레써피로 과일을 한 알씩 두꺼운 고기로 둘러 싼 다음 꼬치로 고정하고 구워낼 수도 있다.
프랑스 요리에서는 굳이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쓰지 않더라도 ‘라드’라고 부르는 돼지비계를 쓰는 일이 잦다. 두꺼운 베이컨 정도로 기름지고 향이 강한 라드를 팬에 볶아서 팬 바닥에 먼저 향을 낸 다음 야채를 볶거나 하는 것이다.
오늘의 요리도 그렇게 시작할 것인데, 그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바로 적포도주에 고기를 재우는 일! 요리에 쓸 와인이라고 하면 와인숍에서 저렴한 와인을 추천 받을 수 있는데 가격대는 5,000원 선 정도가 좋다. 와인을 따라 붓고 통후추를 띄운 후, 도톰하게 썬 돼지고기를 담그면 된다. 여기에 기호에 따라 야채나 버섯 등을 넣어 함께 재우면 함께 구울 때 젓가락 갈 곳이 늘어난다.
와인숙성 삼겹살과 흡사한 빛으로 고기가 물이 들면 고기의 잡냄새가 줄고 와인향이 배었다는 신호. 이 때 건져서 물기를 적당히 제거한 다음 돼지비계를 볶으며 달궈 둔 팬에 굽는다. 돼지비계를 볶을 때 다진 마늘과 와인에 재웠던 야채를 함께 볶아도 좋은데, 이렇게 팬 가득히 향을 돋궈놓으면 고기가 치직하고 익어 들어갈 때 향이 한 층 깊어진다.
고기의 겉을 바짝 익힌 다음 팬에서 꺼내어 곁에 두고 남은 와인과 볶은 야채를 뭉근하게 졸여 소스를 만드는데, 소스가 완성되면 여기에 다시 고기를 넣고 속까지 익히면서 소금과 후추로 마무리 해주면 된다. 다진 파슬리나 허브를 뿌리면 와인의 색이 도드라져서 우아해지고, 돼지고기와 찰떡 궁합인 표고버섯이라도 지져서 곁들이면 와인 한 잔 안 할 수 없다.
음식과 주류를 매치할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술이 쓰였는지를 알아보는 것. 예를 들어 청주나 맛술과 같이 맑은 술이 요리에 들어갔다면 역시 청주를 준비하는 것이 음식 맛을 살리는 길이 되겠고, 벨기에 식으로 맥주에 쪄낸 고기 요리라면 진한 보리 맥주를 함께 맛보는 것이 좋다. 백포도주를 부어 잡냄새를 없앤 조개 파스타는 역시 백포도주와 어울릴 것이고, 오늘처럼 적포도주에 재웠다가 구운 돼지고기에는 붉은 와인이 제격이다.
▲ 매운 두부와 돼지고기 볶음
다진 돼지고기와 작게 썬 두부, 그리고 두반장을 볶아서 만들어내는 마파두부는 인기 있는 메뉴다. 매운 맛을 가끔 찾는 나도 즐겨먹는 요리인데, 다진 고기 대신 길이로 도톰히 썬 고기를 쓰고 두반장 대신 고추마늘 소스를 넣기도 한다. 맛이 진하고 짭짤한 두반장보다 칼칼한 고추마늘 소스는 식품 매장에서 쉽게 살 수 있는데, 고기 요리를 뚝딱 볶아 내거나 튀긴 생선에 곁들이기에 그만이다. 달달 볶은 땅콩에 소금을 뿌려 두거나 소금에 절였다가 꼭 짜낸 오이를 중국 향신료에 담가 두는 등의 수고를 평소에 할 수 있다면 돼지고기와 볶아낸 매운 두부요리에 좋은 찬이 되겠다.
돼지고기를 썰어 넣은 김치찌개, 다진 돼지고기로 소를 채운 접시 만두, 버터를 넣은 크림소스를 레몬과 함께 곁들인 로스트 포크 등 세계는 넓고 먹을 요리는 많다. 황사나 먼지 핑甕?대면서 돼지고기나 먹자고 친구, 가족을 불러모아보자. 매식보다는 가정식으로, 야채를 듬뿍 곁들여서 여럿이 먹는 돼지고기는 부담이 없고 배도 부르다.
EBS 요리쿡 사이쿡 진행자 박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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