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를 보낸 분이 바로 당신이었군요. 꼭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12일 출국한 미국 슈퍼볼 최우수 선수(MVP)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 김영희씨와 함께 10여 년 전 자신을 성원했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후원자를 아무도 모르게 깜짝 방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토요일이었던 8일 저녁, 워드는 서울 서초동에 있는 불고기전문점 사리원을 찾았다. 주인 나성윤씨를 만나기 위해서다. 전날 예약 전화를 받았기에 워드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TV에서만 봤던 슈퍼 스타를 만나게 되자 나씨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목기술사로 일하던 나씨가 ‘하인스 워드’란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3년 전인 1993년. 한인회로부터 혼혈 흑인인 풋볼 유망주를 돕는 바자를 연다는 전화를 받았다.
당시 조지아대 진학을 앞두고 있던 워드는 지역 신문에 대서특필 되는 등 기대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100달러의 성금을 보낸 나씨는 하지만 바자에는 참석하지 못해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누지는 못했다.
미국에서의 인연을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나씨는 2월 슈퍼볼 시즌을 전후해 워드의 성공 스토리를 접하고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후원했던 혼혈 흑인은 어느새 슈퍼볼의 스타로 성장해 있었다. 워드가 슈퍼볼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MVP로 뽑히자 나씨는 너무 기쁜 마음에 워드의 어머니 김씨에게 편지를 보냈다.
“저를 알지도,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10여 년 전 애틀랜타에서 열린 후원 바자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주인공이었던 당신이 10여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장면을 지켜 보니 가슴이 정말 뿌듯했습니다. 당시에는 마주칠 기회를 갖지 못했지만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다니 시간이 허락되면 꼭 식사 한끼를 대접하고 싶습니다.…”
슈퍼볼 스타가 된 후 산더미처럼 쌓인 편지와 전화 공세 속에서도 어머니 김씨는 이 편지를 마음에 뒀다. 한국 방문 전 워드에게도 사연을 들려줬고, 워드는 시간을 내 이 곳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식당 2층에 마련된 특별석에서는 워드 모자, 그리고 나씨만 앉았다. 불고기와 갈비를 시킨 하인스는 와인을 곁들이며 즐겁게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눴다. “슈퍼볼에서 우승한 날 축하 파티 때도 와인을 마셨어요. 그 때 마신 품종 보다 맛이 더 좋은 것 같네요.” 나씨가 애틀랜타 시청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하자 워드는 시 청사 안에 있던 헬스 클럽을 즐겨 찾았던 기억도 들려줬다.
나씨는 “그 바쁜 일정에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후원자를 찾아준 두 모자의 겸손함과 인간적인 매력에 또 한번 반했다”며 “슈퍼볼 MVP와 인터뷰 한 번 하는데 15억원을 낸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식사까지 했으니 20억원은 번 셈”이라고 말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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