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15일 오후 일본 니가타(新潟)현 니가타시. 학교 수업을 끝내고 귀가 중이던 여중생이 흔적도 없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가 11일 한국인 납북자 김영남(金英男)씨가 남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한 일본인 납북 피해자 요코타 메구미(당시 13세)다.
북한은 77년과 78년을 중심으로 일본인들을 납치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간첩을 일본인으로 위장시켜 한국에 침투시키던 북한은 공작원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교육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했다. 일본에 침투한 북한 특수공작원들은 해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일본인들을 유인한 뒤 선박에 태워 북한으로 끌고 갔다.
현재 북한에서 ‘영웅’칭호를 받고 있는 신광수(76)가 요코타 메구미씨를 납치하는데 직접 관여한 것으로 일본 경찰은 보고 있다. 일본인 납북피해자인 소가 히토미씨는 신광수가 자신에게 메구미를 납치했다고 밝혔다고 증언한 바 있다. 신광수는 1980년 미야자키(宮崎)현에서 일본인 요리사를 납치하는데 가담한 혐의도 받고 있다. 1985년 한국에서 체포돼 사형판결을 받았던 신광수는 2000년 9월 비전향 장기수로서 북한에 송환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신광수와 또 다른 북한 납치범에게 체포장을 발부하고 국제 지명수배를 내렸다.
일본인 납북자들은 북한 특수 공작기관에서 강사 등으로 생활했다. 소가 히토미씨의 남편인 주한미군 출신 월북자 로버트 젠킨스씨는 최근 출판한 ‘고백’에서 굶어 죽는 어린이가 많았던 북한에서 납북자들의 생활은 일반 주민보다는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매우 힘들고 고달팠다고 밝혔다.
북한의 납치 행위 장소는 일본에 한정된 것만도 아니었다. 1978년 6월 다나카 미노루(田中實ㆍ당시 28세)씨가 유럽에서 납치당하는 등 기회만 있으면 세계 곳곳에서 일본인을 끌고 가려고 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은 요코타 메구미씨를 포함해 모두 16명이다. 그러나 납북피해자를 지원하는 일본 시민단체는 모두 23명이라고 주장하면서 일본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특정실종자문제연구회’라는 단체는 일본인 납북자가 100명은 넘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 납북자문제가 쟁점이 된 것은 1990년 후반부터 이다. 1997년 메구미씨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橫田滋)씨 등이 ‘북한에 의한 납치자 가족연락회’를 만든 것이 본격적인 출발이었다.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의 주범인 북한 공작원 김현희씨가 일본인 납북자의 존재를 말하기도 했지만 일본 정부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 겨운 활동에 일본 정치권이 관심을 갖기 시작해 2002년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직접 납치를 시인했다.
일본의 납북피해자 가족들은 메구미씨의 남편이 한국인 납북자라는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을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한 커다란 돌파구”라고 기뻐하고 있다. 한국인 납북자 가족들과 연대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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