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고가주택’으로 규정한 실거래가 6억원이 넘는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현재 7억원 선 안팎에서 매매가가 형성돼 있으니, 우리 경제규모나 국민소득을 감안할 때 ‘저택’이나 ‘맨션’ 정도는 돼야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1980년대 중반에 완공돼 벽이 쩍쩍 갈라지고 화장실 물이 줄줄 새는 27평형 아파트이다. 고가주택으로 분류하기엔 규모가 작고 외관도 초라하기 그지 없다.
3년 전 이 아파트의 매매가는 3억5,000만원, 그보다 2년 전에는 2억원 선이었다. 불과 5년 새 300% 이상 폭등한 것이다. 이 지역 38평형 아파트의 오름세는 더 기가 막히다. 1년6개월 전 6억5,000만원 안팎이던 매매가가 현재 13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른바 ‘교육특구’로 불리는 서울 목동지역 얘기다.
참여정부는 부동산 양극화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미래세대의 희망을 빼앗아 왜곡된 사회구조를 고착화하는 주범이라며 10ㆍ29, 8ㆍ31 등 강도 높은 투기억제 대책을 계속 쏟아냈다. “집값을 안정시키겠다”,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잡겠다”는 대통령의 경고성 발언도 이어졌다. 하지만 집값 양극화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최근 발표된 3ㆍ30대책에 대한 시장의 반응도 싸늘하기만 하다. 집값 폭등의 진원지인 서울 강남권의 중ㆍ대형 공급 옥죄기가 되레 집값 불안심리를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집값 오름세가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 정부 표현을 빌리자면 불과 ‘전체의 2% 미만’ 지역이 동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양극화 해소를 명분으로 소형ㆍ임대주택을 장려하고 중ㆍ대형 공급을 억제하는 정책이 집값 양극화를 더욱 부추기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중년이 되면 소득이 늘어나고 아이들도 커가면서 넓은 평형의 아파트를 꿈꾸기 마련이다. 노후 준비에도 신경 써야 할 시점이다. 예전과 달리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데다 자식에게 의지하기도 어려워진 탓이다. 연금도 미래를 맡기기엔 왠지 께름칙하다. 때문에 이왕 넓혀갈 아파트라면 투자가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종 편의 및 기반시설이 잘 갖춰지고 교육여건도 좋은 서울 강남과 목동, 경기 분당 등 수도권 남부지역의 중ㆍ대형 아파트가 타깃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인구구조를 보면 자산축적 욕구가 어느 세대보다 강한 40, 50대 중ㆍ장년층의 숫자가 2015년까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들은 ‘2% 미만’ 지역의 중ㆍ대형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계층이다. 최근 중ㆍ대형 및 주상복합 아파트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적립식 펀드, 변액유니버셜보험 등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 같은 인구구조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누구나 선호하는 강남권의 규제를 풀어 중ㆍ대형과 주상복합 아파트의 공급을 늘리는 것이다. 낙후된 강북을 개발해 강남 수요를 분산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들만의 잔치’에 배 아파 할 이유는 없다. 단기적으론 ‘머니게임’에 따른 혼란이 불가피하겠지만, 결국 주거환경이 나빠져 집값 양극화가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의 단계적 폭등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자면, 혹시 쾌적하고 살기 좋은 강남을 유지하고픈 관료들의 ‘음모’가 개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동산 대책 마련에 앞장선 대다수 관료들이 범강남권에 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고재학 기획취재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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