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의 초입단계부터 ‘검은 커넥션’을 뒷받침하는 단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혹의 실체적 진실에 성큼 다가섰다는 기대를 갖거나 향후 파장의 심각성을 따지기에 앞서 솔직히 개탄을 금할 수 없다. 매각을 주도한 은행 경영진과 관료들은 책임전가와 변명에 급급하지만, 이미 2002년 말부터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기는 시나리오가 마련됐고 이를 위해 갖가지 편법ㆍ불법적 행태와 ‘거래’가 진행됐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외환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9%대로 파악하고 있었으나 금융감독위원회엔 6%대로 보고했고, 이 과정에서 ‘의문의 팩스’와 금감원 간부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법 상 부실은행일 경우에만 비금융펀드인 론스타에 매각할 수 있는 규정에 꿰맞추기 위해 BIS 비율을 조작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이강원 당시 외환은행장이 “BIS 비율이 과장되긴 했어도 조작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우습다.
매각실무를 맡았던 은행간부가 친구인 매각자문사 사장에게서 자문료 중 일부를 차명계좌로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검찰의 말처럼 ‘깜깜한 곳에서 의외의 실마리가 잡힌’ 경우다.
확대해석하긴 이르지만 외환은행-금감원-재경부-론스타 등 주역들의 얽히고 설킨 인연 뿐 아니라 추잡한 돈까지 개입됐을 개연성을 보여 준다. 이미 논란이 된 경영진과 사외이사의 거액 퇴직금과 스톡옵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다 정부 대책회의 회의록, 외환은행 이사회 회의록, 외환은행과 론스타 간에 오간 문건 등의 내용을 겹쳐 살펴보면 “당시로선 론스타가 유일한 대안이었고, 잘못됐으면 제2의 외환위기가 왔을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무색해진다.
2003년 상황을 지금 잣대로 섣불리 재단하거나 론스타와의 거래가 원인무효라고 성급하게 말할 수 없지만, ‘거대 의혹’에 따른 대가 만큼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사자들은 책임있게 입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차제에 투명하지 않은 정책판단의 잘잘못에 대한 사법적 잣대의 기준도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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