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기’라는 말을 알게 된 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같은 반에 얼굴이 새하얗고 코가 뾰족하고 눈이 파란, 금발머리 여자 애가 있었다. 그렇게 생긴 애는 동화책에서나 보았지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다. 이름이 김수지였다.
인형처럼 예쁜 옷을 입고 다녔다. 그 누구도 수지를 튀기라 부르지 않았고 어린애들답게 아직 편견은 없었지만 그 애와 잘 섞이지는 않았다. 아마 어린애들 특유의 무심함이 작용했을 것이다. 수지도 무심한데다 좀 쌀쌀맞은 성격이어서 친구를 만들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 애가 턱을 치켜들고, 고기와 야채를 두툼하게 끼운 빵을 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수지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야멸차게, 어찌 보면 좀 자랑하듯이 그 참 맛있어 보이는 것을 먹었다. 그 장면과, 무서움을 타서인 듯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을 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리고 있었는데, 그 어색한 표정의 어린 얼굴을 끝으로 수지의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어렸을 때 나는 ‘튀기’라는 말이 혼혈아를 뜻하는 영어인 줄 알았다. 튀기는 ‘종(種)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난 새끼’라는 순 우리말이다. 사람에게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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