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이민자 구제를 포함한 새 이민법 통과가 상원에서 일단 제동이 걸린 상황에서 10일 이민 규제 강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쓸었다.
이날 워싱턴과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60여개 도시에서 다발적으로 진행된 시위에는 줄잡아 200만명 이상이 참가, 불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획득할 길을 열어줄 것 등을 촉구했다.
미국 내 불법이민자가 1,200만 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전국 규모의 조직화된 시위는 의회에서의 이민법안 논의가 반(反)이민 쪽으로 흐를 경우, 보다 격렬한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민 문제가 미국의 국가적 난제가 돼버린 셈이다.
이날 오후 워싱턴에서는 멕시코 등 남미 출신 라티노 노동자, 학생들이 주축이 된 20여만명의 시위대가 시 중심부 워싱턴 기념탑 광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뉴욕에서도 맨해튼 시청 앞 등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달 25일 50만명을 동원했던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해 크고 작은 20여개의 집회가 주 전역에서 열렸다.
최근 주 정부가 불법 체류자들의 신원확인을 강화하는 법안을 마련한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서도 3만여명이 참여한 시위가 벌어졌다. 앞서 9일에도 텍사스주 댈라스에서 35만~50만명으로 추산되는 시위대가 거리 행진을 벌이는 등 몇몇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이어졌다.
시위를 주도한 라티노 연합체, 종교 및 인권단체, 노조 등은 일반 미국민을 자극할 것을 우려, 시위 참여시 출신국 국기를 들고 나오지 말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시위 주도세력은 또 정치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위해 이민자들의 유권자 등록 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아시아계, 중동 및 아프리카계도 점차 조직화하는 양상이다. 한인들은 로스앤젤레스, 필라델피아 등에서 전통 북을 치면서 시위에 참여했고, 중국인들도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시위를 벌였다.
지난 7일 불법 이민자 구제 방안이 포함된 이민법안을 부결시킨 상원은 2주간의 휴회가 끝난 뒤 24일부터 새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한 절충을 시작한다. 이와 관련, 공화당 소속 알렌 스펙터 상원 법사위원장은 9일 향후 공화ㆍ민주 양당의 협상 전망에 대해 “냉각 기간을 거친 뒤 새 법안에 합의, 통과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낙관적 견해를 밝혔다.
상원에서 최종안이 마련되더라도 시위의 직접적 타깃이 되고 있는 불법이민자 규제 일변도의 내용으로 하원을 통과한 ‘센센브레너법’과의 절충이 또 필요하다. 시위 주도세력은 5월 1일을 ‘이민자가 없는 날’로 설정, 직장 및 학교 보이콧을 계획하고 있어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워싱턴=고태성 특파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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