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는 힘이다. 10ㆍ26 이후 전두환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보안사령관으로 많은 정보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올바른 정책결정에서 정확한 정보는 필수적 요소이다. 그 때문에 많은 정책연구가들은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는 것 같지만 정책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관료에 의존하고 있어 내용적으로는 꼭두각시노릇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민주사회에서 국민이 주인이고 여론이 중요한 것 같지만 실상은 정부가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정보를 독점하고 때로는 왜곡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이 그 예로서 부시 대통령은 마치 후세인 정부가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는 것처럼 국민과 세계를 속였다.
노동과 사회운동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은 정책결정과 정보라는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얼마 전 민주노동당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도움을 받고 경호권까지 동원해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를 확대하는 대신 파견근로제 등 비정규직을 대폭 합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최근 민주노동당의 단병호 의원이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폭로했다. 우선 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비정규직 보호 입법의 시행효과’라는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실행되는 경우 정규직의 51% 수준인 비정규직의 임금이 85~90%로 높아지는 등 비정규직 차별이 개선되고 비정규직 사용도 억제될 것이라는 입안자들의 주장과 달리 정규직 대비 상대임금의 상승효과가 3% 정도에 그치는 등 그 효과가 별로 크지 않고 고용축소 등 부정적인 영향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놀라운 것은 노동부가 이 연구결과를 지난해 말 습득하고도 이를 공개할 경우 법안 통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공개하지 않다가 법안이 환노위를 통과된 뒤 근 석 달 만에 이를 공개했다는 단 의원의 비판이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연구결과 공개가 늦어진 것은 공개 전에 연구결과를 검토하는 행정적인 절차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단 의원의 주장처럼 노동부가 이처럼 중요한 연구결과와 정보를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인지, 아니면 노동부의 주장처럼 단순히 행정적인 절차 때문에 공개를 지연시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이 문제로 뜨거운 논쟁을 벌이며 갈등하고 있을 때 노동부는 이미 이 같은 중요한 정보를 손안에 넣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연구결과를 국회에 전달해 입법에 참고하도록 하지 않고 다른 곳도 아니고 공신력 있는 정부연구기관의 연구결과를 검토한다는 이름 아래 책상 속에 처박아 놓음으로써 엄청난 국론낭비를 초래하는 직무유기를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연구는 “비정규직 입법안의 입법과 시행에 따른 효과를 객관적 자료로 제시함으로써 비정규직 입법을 둘러싼 논의가 더욱 생산적일 수 있도록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 이 같은 논의와 입법에 도움을 주지 않으려면 무엇 때문에 많은 예산을 들여 연구를 했는가? 여야의원들이 이 법안의 효과를 놓고 격론을 벌리고 경호권까지 발동하고 있을 때 노동부 관계자들은 연구결과를 책상 위에 올려놓은 채 “아무것도 모르면서 놀고들 있네”라며 국회의원들을 조롱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쁘게 보면 노동부의 대국민은폐공작, 좋게 보면 직무유기로 인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연구결과가 뒷북치는 연구가 되고 말았으니 안타깝다. 이제라도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새로 논의를 시작해야 하며 국민이 은폐의 정치, 지연의 정치를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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