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종로3가 레코드점 ‘뮤직프라자’. 예닐곱명의 손님들이 10평 남짓한 작은 가게의 한 쪽 진열장에만 다닥다닥 몰려있다.
친구와 함께 온 30대 여성부터 혼자 가게를 찾은 50~70대 남성들까지, 세대와 성별도 제각각이다. 손님들이 어떤 CD를 고르나 슬쩍 들여다보니 이들이 손에 들고 있는 건 모두 트로트 음반. “하루 팔리는 음반 중 절반 이상이 트로트예요.” 김용임 3집 앨범을 찾는 한 고객에게 CD을 골라주던 백용오(29) 사장은 “요즘은 트로트 음반 말고는 이문 남는 게 거의 없다”며 “트로트를 많이 팔수록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디지털음원의 보편화로 음반시장이 극심한 침체에 빠졌지만, 트로트만은 예외다. MP3나 인터넷을 통해 음악을 듣는 신세대들과 달리 CD나 카세트테이프 등 ‘정통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 트로트 팬들은 음반시장을 지키는 최후의 첨병이다.
세대간 ‘정보 격차’가 트로트를 음반시장의 마지막 보루로 만든 데 한몫을 한 것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누가 음반을 사나요. 지갑을 여는 분들은 다들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죠. 신세대 음악은 백날 팔아봐야 소용없어요. 그런 건 잘 나가지도 않고 남는 것도 별로 없지만, 트로트는 마진도 커서 재미가 쏠쏠한 편이죠.” 백 사장은 “현재는 5대5 정도의 비율로 물건을 들여오지만 앞으로는 트로트 음반을 더 많이 떼어다 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용임과 남수련의 메들리 음반을 좋아한다는 손병구(77)씨는 “트로트 음반을 사기 위해 닷새에 한 번 꼴로 레코드점을 찾는다”며 “우리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인터넷도 못하고, 트로트 음반 사다 음악 듣는 것 말곤 다른 낙이 없다”고 백씨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트로트는 쇠퇴기에 접어든 가정용 노래방 기기나 마이크형 노래반주기, 노래반주 DVD 등 각종 음악산업에서도 주춧돌 구실을 하고 있다. 1990년대 초중반 노래방의 폭발적 인기와 함께 급성장한 가정용 노래방기기 산업은 현재 읍ㆍ면ㆍ리 단위 시골지역의 친목단체나 지자체 문화센터 등을 제외하곤 거의 수요가 없는 상황이다.
서울 청계천 대림상가에서 노래방기기 판매점을 운영하는 이기송 대경전자 대표는 “명절 때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 선물용으로 한 주에 20대 가량 팔리지만, 평소엔 일주일 가도 한 대 팔기가 어렵다”며 “그나마 해외교포들 아니면 시골 이장 사무실이나 주부교실 같은 데서 사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신곡이 나오면 다음날 바로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젊은 층과 달리 트로트 팬들은 고정 레퍼토리를 반복해 부르는 편이라 가정용 기기의 뒤떨어진 업데이트 능력이 큰 결함이 되지 않는다”며 “노래방기기 산업이 트로트 팬들 덕분에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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