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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세계/ 트로트 왜 잘나가나 짠짠짠 짜라잔짠짠~ 꺾는 리듬에 인생을 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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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세계/ 트로트 왜 잘나가나 짠짠짠 짜라잔짠짠~ 꺾는 리듬에 인생을 싣고

입력
2006.04.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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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으라 했는데~ 잊어 달라 했는데~.” 나훈나의 ‘영영’을 입에 달고 사는 이수지(65)씨는 요즘 꿈에 부풀어있다. 아들이 트로트만 수 천 곡이 실린 ‘노래방 마이크’(마이크형 노래반주기)를 사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노래방 마이크 장만하면 친구들과 벚꽃놀이 가서 트로트를 실컷 부를 거야. 우린 자식도 다 키웠잖아. 모여서 트로트 부르며 노는 게 낙이지.”

사업가 박모(39)씨는 직원들과 회식 2차로 노래방에 갈 때마다 ‘울고 넘는 박달재’ 같은 옛 노래를 꼭 부른다. 차 안에도 서 너 개의 트로트 모음곡 테이프를 두고 다닌다. “예전에는 노래방에서 상사 접대용으로 넥타이 머리에 두르고 ‘뽕짝’을 불러주는 정도였는데, 이제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 그런가, 은근히 트로트에 마음이 끌리네요.”

트로트가 이 땅에 선보인 것은 일제시대인 1920년대 말. 피식민지 민족의 설움을 달래주던 트로트는 광복 후 한때 ‘왜색 가요’로 배척 받기도 했지만 대중가요의 대표 장르로 자리잡았다. “회식 술자리나 관광버스 안, 동네잔치 따위에서나 불려지는 노래”라는 말은, 뒤집어 보면 트로트가 그만큼 서민의 삶에 가장 밀착한 노래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요즘은 밝은 장조 음계에 댄스 리듬을 접목한 노래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트로트의 주류는 단조 5음계(라시도미파)다. 여기에 가수들이 ‘꺾는다’고 표현하는 독특한 창법과 ‘쿵짜작~ 쿵짝~’ 하는 반주음, 주로 사랑의 슬픔과 삶의 비애를 담은 가사가 보태지면서 애잔하면서도 어깨가 들썩여지는, 한(恨)과 흥(興)의 묘한 어울림을 빚어낸다. 거칠 것 없던 젊은 시절 “쉰 내 난다”며 트로트를 외면하던 이들도 세파를 겪을 만큼 겪고 난 마흔 즈음에 접어들면 트로트에 마음이 끌리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가수 송대관씨는 “우리네 삶을 가장 원초적으로 대변하는 장르, 아니 우리네 삶 그 자체”라는 말로 트로트의 매력을 설명한다.

시대를 이어가는 트로트의 꾸준한 인기에는 다른 가요 장르와는 차별화 한 독특한 시장 구조도 한 몫을 한다. 요즘 가요계에는 노래보다는 춤과 이미지 컨셉, 패션 등으로 포장된 ‘기획상품’성 가수들이 넘쳐나지만, 트로트계에서는 노래 실력만 통한다.

소위 ‘길거리 가수’로 불리는 무명 가수들도 실력만 인정 받으면, ‘고속도로 테이프’ 제작에서부터 동네잔치, 시ㆍ군 단위 행사, 성인 나이트클럽에 이르기까지 활동 무대는 무궁무진하다. 트로트 가수들의 생명력이 다른 장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것은 이처럼 팬층을 바닥부터 차근차근 다져가는 ‘저인망 생활밀착형’ 활동 방식 덕분이다. 장윤정의 소속사 인우프로덕션의 김성식 실장은 “‘어머나’는 TV에 나오기 1년 6개월 전에 발표된 노래로, 장윤정은 그 사이 수많은 공연과 지역 방송 활동으로 팬들 한 명 한 명에게 이름을 알렸다”고 말했다. “요즘 가요계는 X맨이 좌지우지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나오는 현실이지만, 트로트는 유일하게 지상파 TV를 비롯한 거대 매스컴에 휘둘리지 않는 장르인 셈이다.

‘어머나’의 작곡가 윤명선씨는 “요즘 같은 불황에는 가수가 각종 행사만 열심히 뛰어도 인기를 모을 수 있는 트로트야말로 가요계의 블루오션”이라고 말한다.

서민의 삶에 밀착한 음악과 탄탄한 팬층,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발로 뛰는 가수들. 언제부터인가 TV가 그들을 외면한 사이, 트로트는 그들만의 거대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객원 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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