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집는 도구가 없었다. 왕은 신하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손가락으로 국을 휘저어 고기 덩어리를 건져 먹었다. 좌변기인 ‘구멍 뚫린 의자’는 방 한가운데 있었다. 남녀를 불문하고 엉덩이를 보인 채 그 위에 걸터앉아 일을 봤다.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이 귀해 왕도 몸을 잘 씻지 않았다. 복도에는 지린내가 진동했고, 바닥에는 가발에서 떨어진 비듬과 빈대가 하얗게 깔렸다.
조금 믿기 어렵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인 17세기, 그것도 프랑스 왕궁의 풍경이다. 책은 이렇던 프랑스 파리가 어떻게 거의 모든 문화에 있어세계적 리더가 됐는지 그 이유와 과정을 탐구한다.
역사책에 나오는 사실(史實)을 재구성한 작업이 아니다. 저자인 이지은씨는 프랑스 예술품연구원(IESA) 출신의 ‘오브제 아트 감정사’다. 크리스티, 소더비 등 유명 경매회사의 골동품 가구 조사원으로 일한다. 자신이 공부한 옛 미술품, 건축물, 가구 등 각종 오브제에 나타난 증거를 바탕으로 당시 귀족과 평민들의 생활상을 나름대로 파악했다.
저자는 파리가 문화의 중심으로 떠오른 계기를 루이 13세의 베르사이유궁 건립(1661)으로 보고 있다. 전 유럽의 건축가를 비롯한 예술가들이 50년 가까이 궁전을 지으면서 문화 현상이 집중됐고, 이를 추구하는 돈까지 모이면서 프랑스혁명(1789) 전까지 폭발적인 발전을 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16~18세기 프랑스인들의 문화사이자 생활사이다. 책 제목의 ‘은밀함’만을 생각해 선택한다면 실망한다. 그림 반, 글 반으로 편집되어 있다. 설명에 필수적인 오브제는 따로 설명한다. 쉽게 볼 수 없는 프랑스의 옛 그림, 고급 가구 등을 지면으로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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