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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교수 "자본과 싸우려 마르크스를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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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교수 "자본과 싸우려 마르크스를 깨다"

입력
2006.04.0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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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모가 된 폐허의 땅 ‘이념의 대지’를 헤집으며 새로운 혁명의 꿈을 찾는 몽상가.”“몽상을 실험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불모의 땅을 새로운 창조의 공간으로 변환시킬 어떤 실마리를 찾고자 탐색하는 탐험가.”

마르크스주의가 또 다시 희망의 이름이 되길 바라며 살고 사유한다는 이진경(43ㆍ서울산업대 교양학부 전임강사)씨는 스스로를 이렇게 규정한다. ‘맑스주의와 근대성’‘철학의 외부’‘노마디즘’‘자본을 넘어선 자본’등의 저작을 통해 변혁과 혁명의 그림을 그려온 그가 ‘노동가치론’‘프롤레타리아 무산계급론’등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을 뿌리째 흔드는 내용을 담은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발행)를 내고 논쟁의 한 복판으로 돌아왔다.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를 표시하는 여러 경계선을 넘나들고 침범하며 변경시키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유물론이 물질이라는 개념과 결별하도록 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과 동일시되는‘노동가치론’과 대결하고자 한”책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명제들을 다 부정하면서 더 이상 맑스주의라 할 수 있을까.” 먼저 물었다. 사실 그에겐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한 것 아니냐는 눈총이 따라다닌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구성하는 버릴 수 없는 명제나 논리가 있다는 식의 주장은 자구를 따져가며 해석을 두고 아옹다옹 하는‘훈고학’이라고 비판했다.“당면 조건에서 자본에 어떻게 대결할까 하는 문제 의식이 없다면 마르크스의 글을 아무리 많이 공부해도 그것은 되려 마르크스를 죽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 노동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공장 굴뚝의 시대에서, 인터넷으로 가치가 만들어지는, 돼지를 통한 인간 장기복제 등 생명마저 이윤 창출의 중심이 되는 변화한 지형에 대해“마르크스라면 어떤 질문을 던졌을까”를 고민하는 게 ‘참다운’마르크스주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노동가치론 등 명제들의 집합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전복, 그와는 다른 삶의 방법을 사유하려는 태도”, 즉‘당대 자본주의의 외적 조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로 마르크스주의”라고 했다.

인터넷 뱅킹, 현금인출기를 통해 은행은 직원을 고용하지 않고 소비자가 스스로 기계를 사용하게 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고 바코드를 찍는 순간 ‘무슨 제품, 어떤 디자인이 잘 팔린다’는 정보가 즉각 회사에 전달돼, 생산에 반영된다. ‘접속하는 순간 착취당하는’새 방식이 점점 주요한 착취 방식이 돼간다는 설명이다.

바로 공장 밖에서, 그리고 기계와 생명체가 잉여 가치의 원천이 되고 본격적으로 착취되는 자동화, 생명복제의 시대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에 대해 사유한 게 없다.‘황우석 사태’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새롭게 주어지는 조건 속에서 이미 반쯤은 와 있지만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기계, 생명체-기계의 관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방법을 마르크스주의가 줘야 한다.” 그래서 책 제목도 ‘미-래의 맑스주의’다. 아직 사유되지 않은 것을 사유하는 마르크스주의, 그런 방식으로 도래할 마르크스주의라는 뜻이라 한다.

그는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 무산계급’이라는 전통적 2분법도 깼다. 이제 마르크스주의엔 무엇이 남았을까. 그는“노동자 계급을 자본주의 사회의 주류 계급으로 포섭하는 것이 일반화한 현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계급의 다른 이름, 즉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의 한 종류가 아니라, 자본주의 하에 포섭되지 않고 변혁을 창안하는 모든 소수자들의‘비계급’적 집합”이라고 했다.

그는 “민주노총 등 노조가 자신의 이권을 포기하면서 함께 싸우는 것으로 바뀌지 않으면, (혁명성 프롤레타리아 운동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동운동도 자신의 이해관계 안에만 있으면 혁명의 동력이 아니라, 열심히 일해 좀 더 받겠다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모든 혁명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하나로 융합할 때 가능한 것이며, 예전처럼 ‘계급 적대’로 환원하면 연합이나 연대, 새 관계의 구성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차이를 인정하는 세상, 코뮨주의의 세계를 꿈꾼다.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의 차이를 배제하고 증오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갱신의 계기로 삼는, 자유인들의 연합이라 한다.

그는 “이 책의 불온함이 독자들의 또 다른 불온함을 촉발하고 증식시키길 바란다. 불온한 사유가 불모의 땅에 새로운 삶과 생명으로 퍼져 우리가 딛고 선 대지를 다시 불온하게 뒤흔들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이진경씨는

본명은 박태호다. 1987년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중‘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진보학계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불교, 질 들뢰즈 등 프랑스 철학자 등을 대상으로 삼아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하고 있다.

세간에는 필명 이진경이‘이것이 진짜 경제학’이란 뜻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는 “아무 뜻 없이‘이진형’을 썼다가 다른 책에‘이진경’으로 인용되면서 그렇게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수사기관 조사에서도‘네가 진짜 경제학이냐’고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며 “‘이것이 진짜 형이상학’이 안 된 건 다행”이라고 웃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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