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다보면 시적인 순간, 숭고한 순간을 경험한다. 이런 순간은 종교인의 신앙고백에서 종종 회상되지만 보통의 삶에서도 기적 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최근 한국야구가 WBC 4강에 오를 때도 그런 꿈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시적인 순간의 논리적 특성은 불가능한 것의 현실화에 있다. 도무지 불가능하리라는 통념을 압도하면서 펼쳐지는 현실은 통제키 어려운 정념의 회오리를 일으킨다. 이 회오리는 만끽의 대상일 수 있지만 거꾸로 방어의 대상일 수도 있다. 한국야구가 일본야구를 연거푸 이겼을 때, 한국인은 이 사건이 일으키는 정서적 충격을 끝없이 즐기고자 했지만 일본인은 그 충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그런 방어의 노력은 어이없이 벌어진 사건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왜 일본팀은 한 수 아래인 한국팀에 두 번씩이나 패했을까. 일본 언론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아무개가 빠졌기 때문이라는 둥, 일본 선수들이 애국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둥 하면서 믿기지 않는 현실을 소화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설명들 중 웃음을 자아낸 것은 특히 어느 TV 기자의 해설이었다. 한국팀이 연전연승하면서 4강에 오른 이유는 선수들이 병역면제 혜택을 노리고 필사적으로 뛰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일본인의 노력이 거의 필사적이었음을 읽을 수 있는 기사였다.
이즈음 교실에서 마침 헤겔을 강의하고 있던 나는 이 독일 철학자의 역사철학에서 한국야구의 승리이유를 찾을 수 있는 듯하여 학생들과 더불어 박장대소했다. 형이상학적 사유의 특징은 감성적인 세계에서 순수 정신적인 세계로 향한다는 데 있다. 이런 형이상학적 이행의 방향은 역사 속에서 동서(東西)의 방향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헤겔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인류문명의 역사는 정신의 역사이고, 정신의 역사는 동양에서 시작되었다. 동양에 해당하는 서양말 오리엔트는 해가 뜨는 땅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바, 동양이 바로 인류문명의 아침이라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 해당하는 서양말 옥시덴트는 해가 지는 땅 혹은 저녁의 나라라는 뜻을 담고 있다. 헤겔은 동양에서 시작된 정신문명이 19세기의 유럽에서 최종적으로 완성된다고 보았고, 이런 역사적 과정 전체를 해의 궤적에 비유하여 “하루의 노동”이라 불렀다. 태양=정신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과정이 세계사의 형이상학적 운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헤겔 이후에도 역사는 계속되었고, 따라서 태양=정신은 서진(西進)을 계속해왔다. 게다가 지구는 둥글므로 서진을 계속하면 동쪽이 나온다. 이 점을 받아들이면 서양 중심의 역사관을 대표하는 이 철학자의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동양의 역사적 부활을 설명하는 이론적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역사를 서양인의 시각으로 본다 해도, 그리스 로마 중심의 지중해 시대 이후 서유럽 국가들 중심의 대서양 시대가 열렸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태평양 시대가 열렸으니 문명사의 중심이 계속 서진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추세가 이어져 앞으로 한 두 세기 이후에는 인도양의 시대가 올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태평양 서안(西岸)에서 인류문명이 재편되는 국면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한국야구가 좀체 지지 않던 이유, 특히 일본팀에 2연승을 거둘 수 있던 어떤 운명적인 필연성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의 태양=정신이 저녁의 나라들을 거쳐 서진하다 마침내 아침의 나라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승전보는 세계사의 새로운 아침이 조선(朝鮮)이라 불리던 한반도 주변에서 시작될 것임을 예고하는 여러 조짐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이런 헤겔식 농담은 비록 국수주의적 과대망상에 빠져든다 해도 병역면제 혜택 운운하는 설명에 비하면 적어도 눈곱만큼은 더 설득력 있는 풀이가 아닐까.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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