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지하철역에나 해당되지 기차역에는 당치 않다. 도심에 있으면서 좀처럼 재개발이 안 되던 곳이 서울역 일대다. 그나마 지하철역이 생겨서 연결된 지 한참 후인 몇 년 전부터야 쭈뼛쭈뼛 새 건물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대도시의 중앙역들이 대개 그렇듯 그 전엔 서울역 근처도 살풍경했다. 건물들은 칙칙하고 그 안의 허름한 요식업소들은 주인이나 손님이나 철새 같은 눈빛이었다. 그 바깥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훈기 없는 얼굴로 마치 꼭 그래야만 한다는 듯 서둘러 지나다녔다. 걸음을 서두르지 않는 사람들은 분주한 눈빛의 소매치기거나 인신매매범이거나 사기꾼, 그렇지 않으면 걸인일 것이었다. 그래서 이제 막 서울에 도착했거나 서울을 떠나기 위해서만 발걸음을 했던 곳이 서울역이었다.
그런데 쇼핑몰이 들어선 휘황찬란한 새 역사가 생긴 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거기서 쇼핑이나 외식도 할 만해진 것이다. 그 안락함은 KTX와 더불어 생겼다. 훤해진 서울역을 지나며 옛 서울역 건물을 본다. 이제는 한 오라기 빛도 내보내지 않고, 오히려 바깥에서 조명을 받고 있다. 아른아른 단청 빛을 바른 폐쇄된 역사, 전아한 미망인 같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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