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현대ㆍ기아차 그룹에 대한 전면 수사 방침을 밝혔다.
특히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귀국을 미룰 경우 수사가 장기화되고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회장의 조기 귀국 여부가 수사 향방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현대ㆍ기아차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앙수사부(박영수 부장)는 5일 현대차 사건에 모든 역량을 투입해 우선적으로 수사하고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의 로비의혹 사건은 현대차 수사가 끝내고 하겠다고 밝혔다.
현대ㆍ기아차 그룹 전체로 검찰 수사가 확대되면서 비자금 조성 경위와 수법도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과 정황을 종합하면 검찰 수사의 1차 타깃이었던 현대차 계열사 글로비스는 하청업체와 다른 계열사 등을 통해 비자금을 만들어 관리한 비자금의 ‘공장’이자 ‘창고’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압수수색에서 발견된 벽 속 비밀금고와 “계열사 비자금을 모아 이 비밀금고에 보관했다”는 회사 관계자 증언 등이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이 비자금은 주로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실탄으로 썼거나 쓸 목적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와 특수관계인 구조조정전문회사(CRC)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계열사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정 사장의 그룹내 지분 확장을 돕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풀이된다.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의지를 밝히는 것은 이 같은 비자금 흐름을 파악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비스는 계열사 가운데 비자금 조성 액수가 가장 큰 회사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2001년부터 하청업체와의 위장 거래를 통해 70억원을 마련한 사실이 이미 드러났다. 또 미국 뿐만 아니라 슬로바키아 호주 등의 세계 곳곳에 있는 해외법인이 비자금 조성 창구로 이용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검찰은 글로비스의 회사내 비밀금고에서 보관돼 있던 80억원 가량의 현금과 수표,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이 현대오토넷 등 다른 계열사가 조성한 비자금인 것으로 보고 있다.
비자금에 관여했던 한 현대차 퇴직자는 “1주일에 1~2번씩 현대차 계열사 3~4곳에서 한번에 5억~6억원씩을 1만원권 현찰로 가방에 넣어 가져왔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검찰은 현대차 그룹이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차원에서 위아(옛 기아중공업) 본텍(옛 기아전자) 카스코(옛 기아정기) 등을 매각했다가 계열사로 재편입하면서 CRC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와 관련, CRC가 현대차 비자금을 운용하면서 그룹 내부 정보를 이용해 계열사 주식과 채권 등을 매입해 수익을 올려 비자금을 부풀려 주었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현대차가 인수를 계획한 기업의 지분을 미리 매입했다가 인수 후 지분을 팔았을 수도 있다. 검찰은 “아직 조사 중”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글로비스와 본텍 지분을 판 돈 등으로 기아차 지분 1.99%를 사들였다. 그는 또 글로비스 31.88%, 이노션 40%, 엠코 25% 등의 계열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
정 사장이 계열사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에 현대차 그룹의 비자금이 동원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 그룹 임원들이 정 사장을 대신해 계열사 주식을 매집한 뒤 ‘실제 지분은 정 사장 소유’임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작성한 ‘이면 약정서’를 검찰이 글로비스와 현대차 본사 압수수색에서 확보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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