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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나무를 심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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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나무를 심으러

입력
2006.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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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바닷가에 땅을 사놓은 친구가 공문서를 받았다. 그 땅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는 근심에 찼지만 나는 신이 났다. “그럼 심지, 뭐. 내가 심어줄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삽으로 흙을 파고 나무를 심는다니 얼마나 근사한 일일까! 의욕에 찬 내게 고무돼 친구의 얼굴이 환해졌다. 우리는 벚나무 묘목을 사서 싣고 서해안고속도로를 씽씽 달렸다. 내내 즐거웠다. 고속도로 휴게실에서도 노닥거리고, 안면도 근처 읍내의 큰 식당에 들러 두 시간에 걸쳐 생선회도 먹었다. 그러다 친구의 땅에 도착하니 머지않아 어두워질 것 같았다. “빨리 끝내자.”

우리의 나무심기는 서두름보다 빨리 끝났다. 땅을 파야 나무를 심을 텐데 도대체가 아무리 힘을 줘도 삽날이 먹히지 않았다. 이건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집 울타리에 묘목들을 기대놓고 우리는 터덜터덜 돌아왔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무를 심어보려고 했던 날이었다.

그런데 우리를 혼비백산하게 했던 그 땅은 알고 보니 피서객들 발길로 다져진 길이고, 친구 땅은 근처 다른 곳이더란다. 잘났다! 친구는 얼마 뒤 삽차로 땅을 뒤엎고 인부를 사 나무를 심었다고 했다. 우리 걸음이 헛된 건 아니었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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