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ㆍ기아차 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에 심상찮은 기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당초 김재록씨와 관련된 비자금 부분만 수사한다고 했다가 추가로 드러난 비자금까지 범위를 확대하더니 이번에는 “비자금 외에 별건 비리도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2일 미국으로 출국한 정몽구 회장을 압박하기 위한 경고일 수 있지만 검찰이 현대차에서 뭔가 확실한 비리 혐의를 잡고 수사를 전면 확대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작심한 선전포고 3일 검찰의 선전포고는 작심한 듯 이뤄졌다. 채동욱 수사기획관은 오후 브리핑에서 “현대차 수사 기조가 조금 변화할 수도 있다”고 먼저 운을 뗐다. 브리핑은 내내 검찰이 현대차의 새로운 비리를 수사할 수도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이런 기류 변화는 전날 정 회장의 갑작스러운 출국과 관련이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검찰은 이 해석을 부인하고 있지만, 수사팀과 사전 협의도 없이 수사 대상에 오른 그룹 총수가 해외로 나간 데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는 않았다.
채 기획관은 오전 브리핑에서 “(정 회장 출국이) 수사 장애를 초래할 경우 제반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따라서 별건 비리 수사방침은 검찰이 공언한 ‘제반 조치’의 하나로 볼 수 있다.
정 회장이 검찰의 수사확대 방침을 미리 알고 도피한 것이라고 뒤집어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이 추론은 검찰과 현대차가 수사범위에 대해 물밑 교감을 끝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경우 검찰이 확실한 물증을 잡았다는 얘기이고, 수사도 속전속결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별건 범죄 내용은?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현대차의 후계구도 관련 사안이다. 브리핑 분위기도 “후계 구도는 수사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하던 기존 입장과 사뭇 달랐다. 채 기획관은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관련 의혹들도 살펴보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검찰이 밝힌 수사 대상 회사는 현대차, 글로비스, 현대오토넷 등 셋이다. 이 가운데 글로비스와 현대오토넷은 정 사장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글로비스는 정 사장이 그룹의 물류를 독점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해 자산을 불리는 데 이용됐다.
또 현대오토넷이 본텍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정 사장이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던 본텍의 주식 가격이 과대 평가됐고, 이렇게 마련된 자금은 정 사장이 그룹 순환출자구조의 고리 역할을 하는 기아차 지분을 인수하는 데 동원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검찰이 만약 압수수색에서 경영권 편법 승계와 관련한 내부 문서를 확보했다면 배임 또는 공정거래법상 부당내부거래 등 혐의로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압수수색에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이 동원됐다는 점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현대차가 유력 대권주자에게 건넨 정치자금의 흔적이 드러났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가 굴지의 수출기업이라는 점에서 외화 밀반출 혐의나 오너 일가의 개인비리 단서가 확보됐을 수도 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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