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오는 6일 취임 1,807일째를 맞게 된다. 1,806일의 재임 기록을 갖고 있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를 제치고 역대 3위의 장기 집권자가 되는 순간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공언대로 임기인 9월 퇴진을 실행할 것으로 보여 1위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ㆍ2,788일)와 2위 요시다 시게루(吉田茂ㆍ2,616일) 전 총리의 기록을 넘어서지는 못하게 돼 있다. 그러나 재임 중 그가 보여준 ‘고이즈미류 정치’는 역대 어느 총리보다도 강렬하고 파괴적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일본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차지할 것이다.
시종 ‘성역 없는 개혁’의 깃발을 앞세워 온 고이즈미 총리는 그 동안 우정민영화, 도로공단민영화, 독립행정법인 통폐합 등 굵직굵직한 개혁을 달성했다. 국고보조금의 축소와 지방교부금 제도의 개선, 세원(稅源) 이전을 골자로 하는 ‘삼위일체 개혁’을 통해 중앙과 지방의 관계를 새롭게 모색하는 등 작은 정부 만들기를 위한 노력도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달 국회에서 2006년도 예산이 성립한 이후에는 마무리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행정개혁추진법안의 임기 내 성립을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법안은 국가공무원의 총인건비 삭감을 비롯해 특별회계의 개선, 정부계 금융기관의 개혁, 정부 자산ㆍ채무 개혁, 독립행정기구 개편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시장 위주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점철된 비정한 개혁 때문에 일본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개혁 자체가 눈가림식으로 엉터리”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결단하지 못해온 일본의 정치 풍토에서 파격적인 리더십으로 과감한 개혁의 물꼬를 튼 지도자라는 점만은 고이즈미 총리가 평가 받을 만하다.
다만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강행해 이웃 국가와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든 외교는 퇴임 후에도 그에게 치명적인 오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철훈특파원 ch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