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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요덕 스토리'를 보고

입력
2006.04.0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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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올라간 한 편의 뮤지컬이 문화 예술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놓았다. 한국 연극이 이념의 선전 선동 도구거나 국가 제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지 이 십여 년이 흘렀다는 사실이 낯설기까지 하다.

정가 일각과 특정 언론사는 이 공연을 정치적으로 주목하고 대대적인 찬사를 쏟아 붓고, 홍보 도우미를 자청했다. 탈북자 출신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정성산의 최근작 ‘요덕 스토리’가 그것이다(극단 빅디퍼 제작). 몇 년 전 대학로 강강술래 극장에서 탈북인들이 모여 따뜻한 온기로 자신들의 처지와 향수를 그리던 연극 ‘코리랑’과는 규모나 제작 의도가 완연히 다르다.

‘요덕 스토리’란 제목은 중의적 함의를 띠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지명 함경남도 ‘요덕’을 지칭하고 안으로는 그 어둔 현실 속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름인 ‘요덕’, 그러니까 한 생명의 유래담을 담고 있는 셈이다. 인민 공훈 배우 출신 여성 강련화의 몰락한 운명을 중심으로 요덕 수용소의 극악한 인권 상황이 고발되는 한편, 성적 유린 속에서 태어난 아기 ‘요덕’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여주인공의 위대한 모성의 눈물겨운 호소가 전개된다.

운명의 추락이 있고, 음모와 배신 권력 투쟁이 있고, 사랑과 이별의 눈물이 있으며 무겁고 어두운 소재와 주제를 중화시키는 희극적 조연들이 있어 고명처럼 극을 장식한다. 그리고 북한의 풍속을 희화하는 북한 대중 가요의 인용과 선전 선동가, 군무, 탱고, 탭 댄스, 록에서 복음 성가에 이르기까지 각종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세 시간 관람을 유인하고 있다.

극 논리는 빈약하다. 정치적 압제 하에서 인권이 짓밟히는 데는 민감할지도 모르지만, 여성의 성적 유린에 관한 인권 의식은 둔감하여 남성적 판타지 수준에 그친다. 강간으로 아기를 얻은 강련화는 아비 리명수 수용소장의 악행을 모두 용서하고, 아기의 얼굴을 본 리명수는 개심해 인간성을 회복, 강련화의 탈출을 주선한다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이 두 남녀가 부르는 사랑의 듀엣이 무대 위에 울려 퍼지는 순간, 이 작품이 지닌 한계와 모순의 한쪽이 드러난다.

전체 2막으로 구성된 이 뮤지컬은 1막은 북한 사회의 낙후성과 몰인권을 조롱, 폭로하고 2막은 주로 감상적인 사랑 이야기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북한의 인권 실상을 폭로하려는 의도가 감성적 멜로물로 포장되고, 신앙 간증까지 겹쳐지니 상차림이 어지럽다. 형식적 통일과 삽화의 절제, 보편적 감동을 이끌어내는 데는 역부족인 이 작품이 빛을 보려면 좀 더 기다렸어야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연극이 안에서 자기 샘을 더 깊이 파고, 소재를 승화하고, 예술적 완성도를 성찰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 어떤 힘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의 입을 빌어 연극은 시대상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그러나 ‘요덕 스토리’를 통해 필자가 느낀 점은 사회가 일그러진 거울상을 갖고 있을 때, 외려 연극이 일그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치적 이해 관계로 극장을 찾는 정치인들의 행렬(연출가는 극장을 찾은 정치인들을 호명해 소개한다), 남북의 이념과 체제 대립을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보수 언론의 아전인수격 보도 행태 등은 이 연극을 보편적 감동에서 이탈시키고, ‘이념의 간증극’으로 제한한다.

연출가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이 작품을 통해 “모처럼 굿판이 마련됐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그러나 탈북인을 대상화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박탈감과 분노를 직시하되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기 위해 터득할 수밖에 없는 생존 원리가 차라리 더 고통스럽다는 사실에 왜 눈을 감는가.

진정한 민족 굿, 배제와 증오의 분리감이 아닌 통일 지향과 해원의 굿판이 되기 위해 연극을 욕되게 하지 말라. 그들을 이용하지 말라.

두라. 굿은 치유이자 상생이어야 한다.

장성희(극작가,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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