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화성이 추억이 된다. 이제 화성은 법망을 벗어나 영원히 ‘살인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형사들에겐 쓰린 가슴을 쓸어 내리게 만드는 ‘실패의 추억’이 되고, 유족과 국민에겐 피를 솟구치게 만드는 ‘분노의 추억’이 된다.
1986년부터 4년7개월간 10명의 부녀자가 잔인하게 살해된 ‘화성 연쇄살인사건’. 마지막 10차 사건(91년 4월3일)의 공소시효(15년)가 2일이면 끝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피붙이를 가슴에 묻은 유족의 슬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담당 형사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당시 화성경찰서 형사계장이었던 남상국(51) 지능1팀장은 31일 “범인 못 잡은 무능한 형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면서 “애당초 경찰이 수사를 잘못한 사건”이라고 했다. 끝내 해결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자기 반성과 회한이었다. 이날 공교롭게도 10차 사건의 피해자 유족이 화성경찰서에 찾아와 범인을 잡아내라고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남 팀장은 “10년 넘게 매달려서 미련은 없지만 유족에겐 죄스럽다. 공소시효고 뭐고 간에 범인은 꼭 잡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심스럽게 “사실 화성 사건의 공소시효는 이미 지난해 11월 14일(9차 사건) 끝났다”고도 했다. 90년 11월15일 스타킹으로 결박 당한 채 숨진 김모(13)양 사건을 두고 한 얘기다.
“범죄 수법으로 봐선 4, 5, 6, 9차 정도만 연쇄살인으로 볼 수 있고 10차 사건은 조금 달랐어요. 10건 모두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으로 보는 건 무리가 있는데…. 이제와 이런 애기 해봐야 뭐 합니까.”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아쉬움 한 자락이 배어 있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의 실제 주인공이면서 ‘화성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까지 쓴 하승균 경정(60ㆍ2005년 퇴직)은 아예 입을 닫았다. 그는 지난해 고별사를 통해 “화성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라며 “후배 형사들이 못다 푼 한을 풀어달라”고 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전담하고 있는 화성경찰서 강력3팀(5명)은 요즘 수사본부인 안용치안센터에서 매일 전담반 회의를 하고 있다. 안광헌(56) 강력3팀장은 “유족과 국민에게 죄송해 마음이 급하다. 하지만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수사는 계속한다. 범인을 법정에 세우지 못하더라도 유족과 국민에게 알려 실체적 진실만은 밝히겠다”고 말했다. 제보전화도 폭주하고 있다고 했다. 안 팀장은 “범인 몽타주와 유사한 사람이 있다는 제보가 있어 1톤 분량의 캐비닛 7개를 다시 뒤지고 있다”고 밝혔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그 동안 동원 경찰력 연인원 205만여명, 지문대조 수사 4만116명, 수사 받은 대상자 2만1,280명 등 단일사건 최다 수사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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