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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원더풀 아메리카' 1920년대 미국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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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원더풀 아메리카' 1920년대 미국 풍경

입력
2006.04.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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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5월 미국의 어느 도시, 평범한 중산층의 일상을 더듬는 여행으로 독자는 초대된다. 포드의 모델 T 자동차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한 스미스 씨가 21세기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는 동료들과 이제 막 끝난 전쟁(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경기 전망을 논한다. 엉클 샘(미국 정부)은 전장에서 귀환한 사람들을 직업 전선으로 원활하게 흡수한다. 무엇보다 1919년의 “전대 미문의 활황 장세” 덕분에 사람들은 점심 식사가 끝나면 가볍게 춤을 추는 ‘티 댄스’를 즐긴다. 전쟁 귀환병들은 영웅 칭호를 들으며 열광적인 환영을 받는다. 재즈 밴드의 흥겨운 선율을 타고 미국은 이후 10년 동안 역사상 가장 특별했던 시기를 열어 가고 있다.

‘원더풀 아메리카’는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좋았던 옛날’(good old times)에 대한 기록이다. 1931년 출간된 이래, 수정과 증보를 거치면서 당대의 모순과 역동성에 대한 세밀화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듣는 고전적 저서다.

그 10년의 첫 장을 연 것은 팽창주의였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최대의 공신, 미국은 윌슨 대통령이 부르짖은 ‘국제연맹’의 평화 공존 원칙을 시궁창에 처박았다. ‘아메리카 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소련의 적색 공포와 때맞춰 일어난 미국내의 파업 사태는 빨갱이 사냥을, 인종적으로 변질한 불관용주의는 잔학한 흑인 탄압의 상징인 KKK(Ku Klux Klanㆍ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미국의 극우비밀결사)를 촉발시켰다.

책의 내용은 21세기 미국의 예고편일까. 신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기치 아래 정치ㆍ경제적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미국이 있기 오래 전, 그 싹은 트고 있었음을 역사는 말해 준다. 끊임없이 포식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거대 자본이 갓 배태되고 있던 당시, 아직은 순진한 미국이 그리고 있던 천연덕스런 풍경이 바로 이 책이다. 댄스 파티와 KKK단이 공존하던 시대. 보들레르가 봤더라면 ‘제2의 악의 꽃’이라도 읊었을 지 모를 일이다.

당대의 삶을 풍성하게 제시하는 책의 미덕이 특히 돋보이는 부분은 문화에 대한 배려다. 경제 회복기의 미국인들을 열광시켰던 장난감ㆍ유행ㆍ스캔들을 비롯, ‘더 솔직하고 대담하게’라는 기치로 봇물처럼 일어난 여성과 섹스의 해방 등의 대목에서는 잘 씌어진 사회사 서적을 보는 듯한 재미를 제공한다.

책의 제목은 출판사측과 옮긴이의 협의 아래 붙여졌다. 원제 ‘어저께만 해도’(Only Yesterday)가 옛 황금기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묘한 감정을 담고 있다면, 번역본의 제목은 풍자의 냄새까지 풍긴다. 맨 뒤에 물음표를 붙일지, 느낌표를 붙일지는 독자의 몫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책의 내용은 현재 한국 사회와 자꾸만 오버랩 되려 한다. 요즘처럼 청와대발 뉴스에 일비일희하는 한국인들이라면 엄청난 친인척 비리와 스캔들로 얼룩졌던 하딩 대통령에게 할애한 대목인 ‘하딩과 스캔들’에 유독 눈길이 쏠릴지도 모른다. 또 “부자 되세요”가 아예 인사말이 된 이 곳 현실에서, 단지 호황 덕에 실제 이상의 과분한 찬사를 누렸던 범용한 대통령 쿨리지에 관한 이야기는 아이러니한 교훈으로 다가온다.

책은 그림으로 보는 시대사라고도 할 만하다. 원서에는 없던 생생한 사진 1,000여점과 친절한 캡션들은 이번 번역판이 나오면서 편집진에 의해 추가된 터라, 눈으로 보는 재미는 한국 독자들에게 주어진 덤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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