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서문 형태의‘서술식’으로 쓰자.” “법정에서 싸울 때도 쓰는데 지금처럼 ‘개조식’으로 하자.”
지난달 30일 정부 과천청사 공정거래위원회 대회의실. 정장 차림의 공정위 직원 30여명이 심사보고서 작성 문체를 바꾸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 논의를 하고 있었다. 마침 옆 회의실에서 간부회의가 열렸는데, 시끄러워서 회의를 못하겠다며 발제자에게‘목청 좀 낮춰달라’는 요구가 전해올 정도였다.
심사보고서란 공정거래법을 어긴 기업 등의‘죄상’을 기록해 위원회와 해당 기업 등에 전하는, 검찰로 따지면 공소장에 해당하는 법률문서다. 일반인은 평생 한 번 보기는 고사하고 이름조차 들어볼까 말까 한 낯선 글의 서술법을 두고 평서문으로 고칠지, 아니면 현재 사용중인‘□, ○, -’등의 기호로 이어지는‘개조식’을 쓸지 왜 이다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것일까.
이들은 공정위의 글쓰기 모임인‘보고서 잘 쓰기 동아리’회원들이다. 2월에 닻을 올려 4차례 모임을 가졌다. 회장인 한철수 카르텔조사단 단장이‘보고서 쓰는 요령 60가지’란 주제로 작성자 중심, 어려운 전문용어 남발 등 공무원 글쓰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새로운 글쓰기 훈련의 필요성을 제안하면서 모임이 꾸려졌다. 지금까지 정책검토 보고서에 대한 2차례의‘사례 보고’와‘초안과 최종안의 비교검토’등을 했다. 1차 목표는 7월까지 공정위 직원용 글쓰기 매뉴얼을 만드는 것.
한 단장은 “정부가 하는 일은 결국 글로 나타내는 것”이라며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 보다 알기 쉽고 명쾌하게 작성하면, 정부가 생산하는 서비스의 질이 올라가고 신뢰도 차곡차곡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악’소리를 내는데도 정작 공직사회에선 별다른 문제 의식 없이 기존의 글쓰기를 답습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공직사회는 물론 언론과 시민 등 ‘독자’를 중심에 두고 글을 쓰자는 생각이 모임의 동인이 됐다고 한다.
이날 모임에선 “판례 인용의 형식이나 표기 방법의 통일이 필요하다”는 의견,“일자나 금액 표기 방법도 저마다 들쭉날쭉”이라는 자성, “경쟁법에 문외한인 시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전문용어에는 꼭 주석을 달자”는 제안 등이 나왔다. 현행 법령엔 굳이 구체적인 사항을 쓰지않아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에는 “10년 후 일반인이 볼 수도 있다”는 독자 중심의 반박도 따랐다.
모임 말미에 한 단장은 공무원의 공식문서도“고교생이 알 수 있게 써야 한다”고 했다. 시민들이 알기 어려운 전문용어나 줄임말(略字) 등은 주석으로 친절히 알려 주고, ‘핵심기업’을 ‘알짜회사’로, ‘감소하고’를 ‘줄어들고’로 바꿔쓰는 등 가급적 한자어 대신 우리말로 쓰자는 것이다. 한 단장은 “우리 글을 읽는 독자는 공정위 내부 뿐만 아니라 대통령에서 언론, 시민까지 다양하다”며 “고객에 따라 상품이 달라져야 하듯,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 내용과 문체, 구체성의 정도, 분량 등이 달라져야 한다”고 공무원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안준현 기자 dejavu@hk.co.kr사진 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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