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ㆍ노동계와 정부의 양보없는 대치로 프랑스 전역을 소용돌이에 몰아 넣었던 최초고용계약법(CPE)에 대해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30일 합헌 결정을 내림에 따라 정국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대통령을 포함해 10명으로 구성된 헌법위원회는 사회당 등 야권이 “CPE가 유럽연합(EU) 노동 규약을 어겼다”며 제기한 소송에 대해“청년 고용 증진을 위한 특별 조치가 헌법에 허용되고, CPE는 헌법에 명문화된 노동권을 실행하는 것”이라며 각하, 우파 정부의 손을 들었다. 헌법위원회 위원들은 대통령, 상ㆍ하원이 임명한 우파 성향이어서 이 같은 결정은 이미 예상됐었다.
공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시라크 대통령은 9일 안에 새 법에 서명, 공포하거나 직권으로 법안을 의회로 돌려 보내 재심의를 요구해야 한다. BBC 방송은 “시라크 대통령으로서는 집권 이후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CPE를 철회할 경우 오랜 측근이자 정치적 후계자인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드 빌팽 총리가 ‘총리직 사퇴’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낸 채 시라크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반대로 CPE에 찬성한다면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과 노동계를 자극,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 몰고 갈 수도 있다.
AFP 통신 등 주요 외신들은 시라크 대통령이 빠른 시간 안에 CPE를 서명, 공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에서 시라크 대통령과 드 빌팽 총리의 지지율은 하락세다. 1일 발표된 르 피가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라크의 지지도는 지난달에 비해 3% 포인트 떨어진 20%, 드 빌팽 총리는 5% 포인트 하락한 29%에 머물렀다. 두 사람 모두 취임 이후 최저 지지율이다. 반면 “노동계, 학생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딴지를 걸고 있는 사르코지 장관 지지도는 4% 포인트 오른 48%를 기록했다.
가디언지는 정치 전문가들을 인용,“빨리 CPE에 서명하고 노조와 대타협을 시도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제안했다. 프랑스는 1968년 혁명 당시에도 정부와 시위대 책임자 사이의 고위급 협상을 통해 상황을 진정시킨 바 있다.
하지만 시위대는 “법안 폐기 없이 협상은 절대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이 역시 쉽지 않다.
30일 헌법위원회 판결에 앞서 프랑스 대학생과 고교생 수 천 명은 파리와 지방 주요 도시의 기차역과 간선 도로를 봉쇄하며 CPE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한 때 학생 2,000여명이 남부 지역으로 가는 고속철도 TGV의 출발역인 파리 리옹역에 진입해 철로를 막아 열차 운행이 전면 중단됐다. 학생과 노동계가 4일에도 전국적으로 파업과 시위를 벌인다고 선언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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