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벗었지만 감옥에서 보낸 18개월은 인생에서 사라졌습니다.”
번듯한 사업을 하다 옥살이를 거쳐 지금은 서울 영등포구청 근처 월 15만원짜리 여관방에서 홀로 지내고 있는 주진관(59)씨. 주씨의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03년 12월의 일이다.
당시 자동판매기 임대업을 하던 이씨는 대출사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이후 검찰은 명의 대여자를 모집, 허위 자판기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한 뒤 이를 이용해 받은 보증보험증권을 담보로 새마을금고에서 89억10만원을 대출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사기)로 이씨를 구속기소했다. 이씨는 2004년 5월 1심에서 혐의가 인정돼 징역 4년형을 받았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해 5월 27일이다. 서울고법은 당시 “이 사건 피해자들은 명의 차용방식의 임대차계약서가 작성되고 보증보험증권 발급 당시 자판기가 미설치된 점을 알면서도 주씨에게 명의를 대여해 준 것으로 보이므로 피고인이 대출금을 챙기기 위해 피해자들을 속였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유 등으로 주씨와 당시 관련자 김남오(49)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물론 검찰은 상고했다.
2심 판결로 석방된 이씨의 처지는 처참했다. 몸은 자유가 됐지만 잃어버린 18개월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수감 생활 중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했고 함께 일하던 동업자들도 모두 등을 돌렸다. 재산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대표로 있던 한국식품자동판매기업중앙회는 법인취소로 사라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자판기 제작 관련 특허 3건, 실용신안등록 5건, 의장등록 5건 등을 보유, 업계에서 손꼽히던 그였다. “10개월 가까이 법원 세무서 구청 동업자 등을 찾아 뛰어 다녔습니다. 그 덕분에 빌린 돈이긴 하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지친 다리를 쉴 수 있는 여관방은 하나 구했네요.”
대법원 재판부는 30일 한국식품자동판매기업중앙회장 및 자판기 제작업체 주피터컨트롤의 대표로 있던 주씨와 자판기 총판 금성밴딩의 대표로 있던 김씨에 대해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2심 판결인 무죄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주씨는 이날 “자판기업중앙회 법인취소에 대한 취소청구, 형사보상 청구 등을 해놓았지만 언제 답이 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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