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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신대연구소장이 쓴 정신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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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신대연구소장이 쓴 정신대 소설

입력
2006.03.3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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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창립 맴버이자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을 지낸 고혜정씨가 일본군 위안부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소명출판 발행)를 발표했다. 10년 넘게 위안부 할머니들과 한 데서 한 식구처럼 치대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이제 한 발짝 떨어져서 ‘고독한 복화술사’의 읊조림으로 되살린 것이다.

소설은 16살 조선인 소녀 ‘오마당순’이 종군위안부로 끌려가 겪는 고통과 절망의 일상, 그 속에서도 희망과 치유의 끈을 놓지않고 버텨내는 삶과 생명의 고집, 그리고 마침내 종전과 함께 귀환선에 오르는 긴 생애의 이야기다. 그것을 나름의 상처를 안고 사는 해직 기자 출신인 ‘나’가, 노인이 된 오마당순의 일기를 통해 그의 생애를 되짚어가는 형식이다.

소설은, 독자들이 익히 아는(혹은 안다고 생각하는) 위안부의 신산한 고통의 궤적만을 기계적으로 좇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내밀한 상처들을, 그리고, 드러나지 않은 고통과 그 고통을 딛고 이겨내려는 질긴 생명력을, 제국주의의 침략성이 가장 동물적으로 구현되는 최전선에 선 어리고 여린 몸들이 간직한 ‘몸의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그 죽음과 약탈의 현장을 긴 호흡과 너른 시선으로 들여다본다. 그 곳에서 가해자(일본군 병사)와 피해자(위안부)는 생명이라는 아득한 가치 아래에서 하나로 만난다.

“생명 있는 존재에게 죽음이란 아득한 벼랑 아래의 절망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항할 수없이 거대한 존재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죽음을 향하고 있는 한 생명의 가냘픈 공포가 애처로울 뿐이다.”(216쪽) 피식민의 딸인 ‘마당순’의 피멍든 가슴이 제국 병사의 공포를 보듬어 다독이는 역사의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를 넉넉히 품어 안는 여성성과 생명성의 서사가 ‘목각인형과 소원목’ ‘달래깨비와 연꽃’ 등 다양한 비유와 상징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마당순의 삶은 그의 일기의 첫 독자인 화자 ‘나’의 상처까지 감싸 안는다. “언젠가는 허물을 벗고,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를 날을 기대하며. 그녀도 그리고 나도.”(330쪽)

고혜정씨는 “(그간 적잖이 만들고 발표했을 위안부 관련) 논픽션 자료집이나 공개 증언집으로 전달하지 못한 행간의 의미, 그 생명의 숨결을 담고자 했다”고 말했다.

‘사실’들이 담아내지 못한 삶의 ‘진실’, 그 숨결을 ‘오롯이’가 아닌 ‘넌지시’ 전달하고자, 그래서 읽는 이들이 생각하고 재구(再構)하고 되새길 여백을 두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영화의 시퀀스처럼 짧게 끊어 이은 것도 그 때문이다. “길게 이어 써봤더니 그 고통의 서사(역사)가 서사의 고통으로 나를 짓눌러요. 독자들도 그 이야기에 짓눌리지 않겠어요?”

소설 후기에 그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이어졌던 그들의 ‘이야기’와 ‘시간에의 가위눌림의 고통’을 고백한 뒤, 그럼에도 ‘비밀의 화원을 엿본 대가’는 치러야 했노라고, 그 대가가 “고통이 아니라, 그 고통의 흙더미를 뚫고 나오는 생명의 떡잎”이더라고 썼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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