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양귀비 천지 아프간 들녘에 희망의 콩 씨뿌려요"/ 현지서 '콩심기 운동' 권순영박사 부부 오늘 내한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양귀비 천지 아프간 들녘에 희망의 콩 씨뿌려요"/ 현지서 '콩심기 운동' 권순영박사 부부 오늘 내한

입력
2006.03.30 00:04
0 0

1976년 도미해 미국의 3대 분유회사인 네슬레사의 영양식품 개발담당 이사에 오른 재미동포 스티븐 권(한국명 권순영ㆍ57) 박사. 그만하면 남은 인생을 풍요롭게 즐길 법도 하지만 지금 권 박사는 지구 반대편 아프가니스탄 땅에 콩을 심을 생각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권 박사를 ‘콩 박사’로 만든 인연은 2002년 시작됐다.

“들녘에 붉게 넘실거리는 저 꽃 참 아름답소. 꽃 이름이 뭐요.”

지인의 소개로 2002년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권 박사는 놀랐다. 수십 년의 내전과 테러와의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됐을 법한 땅이 화사한 꽃 천지였기 때문. “그게 다 아편의 재료로 쓰이는 양귀비꽃”이라는 현지인의 설명에 한 번 더 놀라고, 여성과 어린이들의 비참한 삶을 본 뒤 경악했다. “앙상한 아이들은 새카만 웅덩이 물을 퍼 마시고 뼈가 약해진 아낙들은 진통제를 밥 먹듯 합디다.” 식량부족과 영양결핍 때문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은 폐허로 변한 들에 양귀비를 심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국의 2004년도 세계마약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밀재배 면적은 전세계 아편과 헤로인 생산량의 90%를 차지했다. 양귀비에 밀려 식량 작물을 생산할 공간은 줄어들었다. 양귀비를 팔아 번 돈으로 밀가루를 사서 난(naanㆍ전병의 일종)을 만들어 먹는 게 고작이어서 단백질과 섬유질 같은 영양소 공급이 부족해졌다.

미국에 돌아온 권 박사는 아프가니스탄을 머리 속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콩이었다. ‘들판마다 콩을 심으면 양귀비도 추방하고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린이와 여성도 구할 수 있겠구나.’ 그리고는 그 해 10월 비영리단체인 ‘영양교육 인터내셔널(NEI)’을 세웠다.

콩은 아프가니스탄에선 거의 재배된 적이 없는 생소한 작물. 권 박사는 이후 틈만 나면 아프가니스탄으로 가 콩과 영양학을 주제로 세미나와 워크숍을 가졌고, 결국 2004년 현지에 콩 씨앗을 뿌리게 됐다. 6,000여평(2㏊)의 시험재배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지난해 콩 심기를 국책사업으로 정하고 전국 12개 주에 콩을 심게 해줬다. 올해 4월엔 아프가니스탄의 32개 주 전역에 콩 씨앗이 뿌려진다.

그가 30일 도움을 찾아 고국에 온다. 자신과 함께 ‘콩 심기 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부인 애니 권(56) 박사도 함께 온다. 부부는 국내에 NEI지부를 세우는 한편, 콩 심기 강연도 하고 정부 관계자와 국내 사업가도 만날 생각이다. 방한 준비에 바쁜 그는 29일 전화통화를 통해 “한국의 종묘와 콩 가공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라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부부는 다음달 1일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간다. “지금까진 시험재배였고 올해가 실질적인 첫 수확입니다. 아프가니스탄 들녘에 주렁주렁 달릴 콩을 떠올리면 설레기만 합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