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진화포럼(이사장 남덕우)이 29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뉴레프트-뉴라이트, 한국사회 어디로 가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보수와 진보 진영의 이념적 틈새와 골을 한 자리에서 확인하고 대화와 토론의 가교를 이으려 한 첫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뉴라이트의 기치를 내건‘교과서포럼’(회장 박효종)과 뉴레프트 계열의‘좋은 정책포럼’(공동대표 임혁백 김형기)이 8시간여 동안 벌인 접점 모색을 위한 논쟁을 요약한다.
◆토론자
-'교과서포럼' 박효종(서울대) 전상인(서울대) 김종석(홍익대) 김일영(성균관대) 교수
-'좋은정책포럼' 김형기(경북대) 임혁백(고려대) 임경순(포항공대)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토론은 ▦건국ㆍ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평가 ▦성장 동력 확충 및 국가 경쟁력 강화 ▦양극화의 원인과 대책 등 소주제로 나뉘어 진행됐다. 사회를 맡은 이승훈 서울대 교수가 "상대 입장에 대한 이해는 분명해졌지만 접점은 못 찾은 것 같다. 더 이상 토론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을 만큼 양측의 시각 차이는 아직 컸다.
◆과거사 평가
임혁백 "보수측은 진보세력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건국 이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하는데, 건국, 산업화 세력이 자유민주주의를 천명하면서도 실제로는 반공주의 이념을 채택한 것 아니냐라고 묻는 것이다."
전상인 "산업화, 민주화 세력 모두 공이 있다. 현 정부에서 과거사 정리 차원으로 산업화 세력에 준 상처와 모욕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박효종 "과거 반공주의는'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옹호할 수 있다. 당시 냉전, 분단국, 신생국이란 차원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이태수 "보수론자의 자유는 절차적, 형식적, 사전적 의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자유와 경쟁, 시장을 중시한다면서 산업화를 위해 민주와 자유를 희생한 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관대하게 넘어가는 건 보수의 일관성 없는 상황 논리일 뿐이다. 뉴라이트가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라는 점에서 박정희 모델을 평가하려면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해야 하는데 되려 지금은 작은 정부를 이야기하는 근본적 모순이 있다."
김일영 "권위주의적 발전 모델이 지속가능한 방식이라는 게 아니라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가장 효과적 모델이었다는 것이다. 도리어 박정희 이후 정권들이 왜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찾는데 실패했느냐고 따져야 하는 것이다."
◆성장 동력
김종석 "도덕적 해이, 무임승차, 갈라먹기 대신 떳떳하게 가치 창조에 참여해 대가를 받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결과적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든 사람을 무책임하고 게으르게 만들 수 있다. 그런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 우리 사회엔 이념과 공리공론이 판치고 있다."
임경순 "도덕적 해이 운운은 60년대에도 거론됐다. 성장 동력 이야기하다 반미적 교육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과거의 보수 이념으로 돌아가면 성장동력이 창출될 것처럼 말하는데 구체적 대안은 하나도 없지 않은가. 토론을 할 기분이 안 난다."
전상인 "지금 교과서는 열심히 가르치고 배울수록 반시장주의자, 반세계주의자로 자랄 것으로 확신한다. 그래서 교육제도 문제도 제기했던 것이다."
김종석 "개방되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며, 인적 물적 자본이 충실한 나라가 잘 되는 것은 상식이다. 좌파의'대타협''노사정위원회 전국조직화' 등의 주장이 우려되는 것은 이익집단만 강화시켜, 얼굴 없는 시민들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조직화한 이해집단의 이익 다툼을 제도화하고, 분산된 사람들이 빈곤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임혁백 "논의가 진행될수록'교과서포럼'의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극단적 경제적 자유에 경도되는 것을 느낀다. 국가가 공익을 실현해야 할 의무는 커지는데 이를 실현할 국가 능력이 축소돼 간다. 과거 국가, 기업, 시민의 경계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 3자가 협력해 공공재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태수 "가난한 이, 실직자의 대부분이 시장에서 무능력의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구조적이고도 비개인적 이유로 고통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다. 시장이 낳은 문제를 시장이 스스로 규제하고 통제할 수 없는 만큼 국가의 역할이 필요하다. 정부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정부에서는 시민들의 참여와 협조, 감시가 강조되어야 한다."
◆사회 갈등과 양극화
이태수 "단층 현상을 가져올 정도로 양 극단의 거리감이 멀어지고, 삶의 형태에 현격한 차이가 보인다. 경제가 성장하면 자연 양극화 문제가 호전된다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 같다. 뉴라이트는 자유주의자도 시장주의자도 아닌 성장지상주의자 같다. 양극화는 성장할수록 더 심화할 수 있는 이상한 구조에 놓여있다."
박효종 "양극화의 해법을 국가가 해야 한다는 데 반대다. 소득재분배 정책을 하려면 국민적 합품?있어야 한다. 진보측은 소득재분배 복지국가로 가면 갈등이 최소화 한다고 하는데 서구 국가의 아킬레스건을 자꾸 따라 가려 하는가."
김종석 "성장이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할 것이라는데, 돈이나 쌀을 주는 것보다 떳떳하게 생산에 참여하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 모든 사회지표가 결국국민소득과 비례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잘사는 나라가 민주주의고, 복지도 좋고 행복지수도 높다."
이태수 "우리 경제구조를 보자. 다른 나라의 국민소득이 올라갈 때와 같은가. 소득재분배가 경제활력을 떨어뜨리고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는데 경제성장의 부작용은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지속적으로 막아줘야 성장과 국민생활 수준이 같이 올라가는 것이다. 서구 복지국가가 실패했다는 시장주의자의 주장에 경도되면 위험하다."
임혁백 "양극화는 IMF 이후 시장 관계가 권력 관계화한 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순수한 시장관계가 아니라 대기업의 부담을 중소기업에 넘기는 구조다. 이는 사회적 협약 등 비시장적 기제로 해결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전상민 "양극화가 현 정부에서 정치적 수사로 쓰인다고 생각되는 것은 불평등도 문제지만 불평등 의식, 상대적 박탈감도 문제다.'최대다수의 최대불만'을 이끌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과 모든 국민이 패배자, 낙오자가 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 주제발표 요약/ 과거사·양극화 등 첨예한 인식 차
교과서포럼 회장인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수는 먼저"386 진보주의자들은 친일ㆍ친미, 반공ㆍ권위주의로 단죄해 온 한국의 과거와 화해하려는 용의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부끄러운 역사'를 부정하며 민주주의를 살렸다고 주장할 지 모르나 민주화는 건국과 산업화의 열매라는 점을 외면해선 안된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국가 건설자와 근대화 추진자들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며"통일 지향과 분단사적 관점에 심취해 민족사적 의미를 경시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또 "민주주의는 운동과 시위 뿐만 아니라 법과 제도,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서도 자란다"고 강조했다.
전상인(사회학)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현 정부는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점점 더 비난과 외면과 배신의 대상이 된 현실을 모르고 있다"며 "민심과 권력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며, 남은 임기 동안 서로 수렴될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이는 정책적 과오나 역부족의 결과라기 보다는 ▦평등 이데올로기 집착 ▦경제성장 가치 외면 ▦양극화의 정치적 활용 등 '의도한 결과'에 가깝다고 그는 지적했다.
전 교수는 양극화에 대해"문제의 본질은 소득 격차가 아닌 빈곤의 확산과 고착인 만큼, 해법은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빈곤 탈출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양극화가 상위계층으로 인해 빚어진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현실 왜곡이자 국가발전을 저해하는 정략"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좋은 정책포럼 공동대표인 임혁백(정치외교학) 고려대 교수는"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적 산업화는 성공했지만 독재를 위해 산업화를 내세우며 민주화를 지연시켰고, 87년의 민주화도 자유화 일변도의 보수적 민주화였다"며 "김대중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이후 정보통신 강국으로 도약했지만'고용 없는 성장'을 야기했고, 고용 양극화와 비정규직 급증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압축적 근대화가 사회적 불균형, 특권, 차별, 배제의 갈등구조를 형성하고,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극화와 빈곤화를 더해 사회갈등이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는 통합을 위한 사회갈등 해결의 원칙으로 ▦협력을 위한 비용과 이익의 공평 분배 ▦사회적 약자와 소외 세력의 우선적 배려 ▦특권과 차별의 제거로 사회적 불균형 시정 등을 들었다.
김형기(노동경제학) 경북대 교수는 저성장과 양극화를 극복하고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새로운 성장 체제인'혁신주도 동반성장 체제'와 새로운 복지모델인'노동연계복지, 학습복지, 복지공동체'가 실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사회의 주요 현안은 노ㆍ사ㆍ정ㆍ민이 대등하게 참여하는 '조정시장경제'를 통해 공정한 시장경제를 실현하고, 각계 각층이 동참하는 대안적 발전연합을 만들어 노ㆍ사ㆍ정ㆍ민의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ㆍ시민운동 등에도 낡은 진보 이념을 넘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정리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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