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은 세계 최저인데, 나날이 늘어나느니 자동차 보유율. 그 같은 자동차의 봇물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때가 있다. 길 위에서라면 접촉 시비일테고, 길 밖이라면 주차 시비다.
최근에는 거주자 우선 주차 제도라는 새 규정으로 점입가경이다.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신작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은 주차 공간을 둘러싼, 한국의 독특한 제로섬 게임에 대한 풍자도다.
“야, 또라이. 너 오늘 죽어볼래? 니가 가서 돈 내고 내 차 찾아 오라고. 만약 견인하다 흠집 하나라도 나면 너 오늘 내 손에 죽는 줄 알어.” 대충 세워 둔 자기 차가 냉큼 끌려간 걸 알게 된 박 사장, 오늘은 폭발 직전이다.
“쪼잔하게 무슨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이라고, 그거 지키겠다고 드럼통 가져다 놓고, 이게 뭡니까?” 육두 문자가 빠질 수 없다. “한 오분만 대고 있으면 가게 주인이 나와서 견인 시켜버리잖아요. 아니면 잡년들 와서 딱지 떼고….” 저쯤 되면 가히 지옥도다. 1997년 시행된 이후, 골목마다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이 실시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실제 무대에서는 활력이 넘친다. 특히 도입부부터 등장해 극의 흐름을 주도하는 슈퍼 여주인은 이른바 서민극 뺨치는 활력과 코믹함으로 객석을 사로잡는다. 푼수와 다혈질을 겸비한 슈퍼 여주인 역의 김경희, 소심한 서민의 조심스런 몸짓을 구사해 내는 남편 윤영걸, 동국대 교수로 있다 5년만에 박 사장 역으로 무대로 복귀한 진남수 등 노련한 배우들의 앙상블 덕에 1시간 25분이라는 공연 시간이 아쉬울 지도 모른다.
대화 도중 시도 때도 없이 방귀를 터뜨린다는 별난 캐릭터인 슈퍼 여주인은 옷 안에 방귀 방석 등을 감추고 나와 포복 절도할 연기를 펼친다.
이로써 극작가 선욱현 씨의 ‘대도시 골목 3부작’이 더욱 속도를 내게 됐다. 한 때 큰 물의를 빚었던 신문배달 문제를 풍자한 ‘절대 사절’ 이후 4년만에 빛을 본 게 이번 작품이다. 다음 작품으로는 나날이 심각해져 가는 생활 쓰레기 문제를 주제로 한 연극 ‘여기다 쓰레기 버리면’(가칭)을 잡아 두고 있다.
연출을 맡은 권호성 씨는 “주차 구획선, 차 모형 등 현재의 주차난을 시각화할 수 있는 기호(sign)를 적절히 배치해 소극장 공간을 최대한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11년째 자신의 역량을 사회 풍자극에 집중해 온 선 씨는 “곧 마흔을 바라보게 되니, 우리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아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희망했다. 이제 38세. 4월 7~30일까지 블랙 박스 씨어터. 화~금 오후 8시, 토 3시 6시. (02)762-0010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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