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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황제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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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황제펭귄

입력
2006.03.2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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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 부성애(父性愛)의 상징으로 황제펭귄 만한 동물을 찾기 힘들다. 남극에 서식하는 황제펭귄은 다른 펭귄과 달리 여름이 끝나는 4~5월 해안에서 100㎞ 이상 떨어진 내륙에서 짝짓기를 해 5~6월초 한 개의 알을 낳는다.

겨울철 내륙에서 알을 낳는 것은 포식자로부터 알을 보호하고 새끼가 품을 떠나는 시기를 먹이 섭취가 쉬운 여름에 맞추기 위한 지혜의 발로다. 알을 낳은 암컷은 먹이 섭취를 위해 바다로 떠나고 수컷이 알을 발등에 얹어놓은 채 영하 40~50도의 혹한 속에서 2개월 가까이 참고 견딘다.

수컷의 체중이 40%나 줄어들 즈음 암컷이 돌아와 부화한 새끼를 돌보면 그 때서야 수컷은 바다로 가 영양을 보충하고 돌아와 암컷과 교대로 새끼를 돌본다. 6주 정도 자란 새끼는 다른 새끼들과 어울려 지내다 여름이 시작되는 1~2월 번식지를 떠나 홀로서기를 한다.

■ 프랑스의 생태학자 뤽 자케가 만든 영화 ‘펭귄- 위대한 모험’은 황제펭귄의 종족 보존을 위한 처절한 사투의 일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는 프랑스국립과학연구소의 극지방 조류생태학을 연구하면서 14개월간의 남극생활을 자청, 황제펭귄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아 전혀 새로운 장르의 영화로 제작해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하얀 눈 속에 숨은 크레바스, 물 밑에서 솟구치는 바다표범, 무자비한 갈매기의 부리, 피부를 파고 드는 폭풍 등의 악조건 속에서 헌신적 사랑으로 새끼를 키워 바다로 내보내지만 20% 전후의 낮은 생존율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 황제펭귄이란 이름이 붙은 것은 몸집이 큰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가슴과 목 부위의 털 색깔이 황제를 상징하는 황금색이기 때문인 듯하다.

인간세계에서 황제란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황제펭귄의 경우에는 무조건적 희생과 사랑을 상징한다. 역사적으로도 진시황이나 네로 황제 같은 사람이 없었다면 황제의 이미지가 오늘날처럼 절대권력과 폭정만이 아닌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이미지가 전혀 없지도 않았을 것이다.

■ 황제골프니 황제테니스니 하는 말이 성행하는 것을 보면 세상이 바뀌었어도 절대권력자의 도락을 즐기려는 인간의 욕망은 쉬이 비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후손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고통을 감내하는 황제펭귄에 비하면 이 땅의 권력자들이 보여주는 삶의 행태는 너무도 탐욕적이라 그냥 봐 넘기기가 어렵다. 더 이상 황제라는 수식어를 붙여 황제펭귄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면 싶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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