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금융브로커 김재록씨의 대출청탁비리 사건의 전개양상이 심상치 않다. 800억원 대의 은행대출을 알선하고 십수억원을, 또 신동아화재의 인수청탁 조건으로 수억원을 받은 혐의만으로도 파장은 만만치 않다.
그러나 김씨가 10여년 전부터 여야 없이 정치권서부터 관·재계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인맥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도처의 이권에 개입해왔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만큼, 현재까지의 혐의 정도로 그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검찰도 처음부터 고위 정·관계 인물들에 대한 김씨의 로비의혹에 눈길을 두어왔다. 실제로 전직 은행장과 최고위 경제관료의 이름이 튀어나오고, 심지어 그가 은행장 인사에 개입한 정황까지 드러나고 있다. 진승현, 이용호, 정현준게이트에 이은 또 하나의 대형 게이트로 비화할 조짐이다.
우리가 이 사건에 특히 주목하는 것은 앞서의 게이트들이 전 정권에서 이뤄진 비리였던 반면, 이번엔 현 정권에서의 청탁정황도 적지 않게 포착됐다는 점 때문이다.
앞서 사건들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추이를 좇아가지 못한 일각의 구태가 재연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그 성과를 자부해온 현 정권에서도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형태의 권력형 비리가 저질러졌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한 마디로 현 정권이 전가의 보도처럼 외쳐온 개혁의 성과라는 것을 의심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실 최근까지 현 정·관·법조계를 제 맘대로 농락해온 브로커 윤상림씨의 행각에서도 어느 정도 짐작치 못한 바는 아니었다.
정부가 아무리 서민들을 위한다고 외쳐대도 일반인이 납득할 수 없는 ‘그들’만의 비리구조가 온존돼 있다면 이런 말은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애를 쓰는 국민들의 의욕을 결정적으로 꺾고 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접게 만들 뿐이다. 음습한 비리의 냄새를 풍기는 브로커들이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서식하지 못하도록 검찰은 책임감을 갖고 한 점 의혹 없는 수사결과를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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