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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모자를 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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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길 위의 이야기] 모자를 쓴 개

입력
2006.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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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가 산책 겸 운동을 나온 개들과 종종 마주친다. 혼자 빨빨거리는 개도 있지만 대개는 보호자를 대동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옷을 입은 개들이 많이 눈에 띈다.

레이스 달린 보닛을 쓴 개도 볼 만하고 ‘Be The Reds!’가 찍힌 빨간 티셔츠를 입은 개도 그렇다. 어차피 옷을 입힐 바에야 잇속 밝은 사람은 자기 개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어줄 수도 있겠다. 광고 문안이 찍힌 옷을 입혀서 거리에 내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제 사료 값도 벌고 병원비도 벌고, 나아가서는 보호자에게 시원한 맥주와 닭튀김을 한 턱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개들은 의료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병원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고 들었다. 개를 기르고 싶은데 이래저래 들어갈 돈 때문에 엄두를 못 내는 백수들은 한번 생각해 보시라.

투견처럼 험한 일도 아니고, ‘플랜더스의 개’ 파트라슈처럼 짐차를 끄는 고된 일도 아니다. 그저 거리를 싸돌아 다니기만 하면 되니 개들의 적성에 딱 맞는 일이다. 따로 운동시킬 필요도 없고 옷까지 덤으로 생긴다.

옷이라는 게 참 묘하다. 개들의 의식까지 바꾸는 것이다. 가만히 보시라. 옷 입은 개들은 벌거벗은 개들을 깔본다.

시인 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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