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선생님! 총리후보 지명을 축하드립니다.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이 없이는 성 차별 해소도 여성의 지위향상도 온전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여성계의 바램을 실어 우리는 한 총리후보님의 정계 진출을 떠밀어 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성총리후보 지명은 여성운동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한 후보님의 정치적 능력, 겸손함과 인내 그리고 늘 긴장의 활시위를 늦추지 않았던 그 사회적 책임감이 더 큰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막상 총리 지명을 눈앞에 두고 보니, 우리 여성들은 한 후보께 더 많은 요구를 내밀면서, 더 많은 역사적 책무를 부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성총리는 그간의 우리 정치문화를 넘어서는 그 어떤 대안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여성들의 강박관념 때문입니다.
대다수의 언론이 지적하는 대로 먼저 한 후보께는 부드러운 지도력을 통한 화합과 공존의 정치를 기대합니다. 걸핏하면 정쟁을 벌이는 정치판, 다소 논쟁적인 사안마다 이를 이분법으로 치환하고 정치권과 공론을 갈라놓은 여론주도층들 사이에서 국민들은 지쳐 있기에, 이나를 조정할 수 있는 한 후보의 능력을 기대할 것입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의 공정한 관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또한 한 후보의 장점인 겸손하면서도 솔직한 태도를 통해서 실추된 참여정부의 신뢰감을 회복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한 후보의 역할이 여기에서 머문다면, 여성들은 실망할 것입니다. 2006년이라는 역사적 시대의 정치를 책임져야 하는 정치가들은 한 마디로 운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세계화가 몰고 오는 사회적 혼란과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무언가 대안정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난해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한 후보께서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주요한 현안들, 실업과 일자리 창출, 저출산과 고령화대책 수립, 사회 양극화의 해소를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데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셔야 할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그간 당면한 사회구조적인 위기에 무감각하였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정부는 사회 양극화와 관련하여 끊임없이 화두를 던졌지만, 그 실천력은 늘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한 후보를 다음 선거까지를 이어줄, 타협과 상생을 가능케 해줄 ‘무난한 총리’로 제한하려는 정치권이나 관료사회 내의 압력을 극복하셔야 합니다.
여성이 바라는 사회는 여성지위 향상이 국민 전체가 바라는 민주적인 대안사회와 결합하는 그런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렵게 구성된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의 더욱 적극적인 가동, 탈빈곤정책의 과감한 실시,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일자리 확대, 돌봄노동의 사회화 등의 사회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빈곤의 절대다수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는 ‘빈곤의 여성화’ 현실을 직시하면서, 사회복지를 위시한 제반 정책을 성별(gender) 관점에서 접근하는 세심함도 요청합니다. 최초의 여성총리에 거는 여성들의 기대와 지지를 전하면서, 앞에서 요구한 난제들을 해결하는 것을 통해서 새로운 총리상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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