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아무리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아도 온갖 끔찍한 폭력과 살인, 위선과 기만, 전쟁과 기아로 뒤덮여있는 곳이다. 수백만이 학살된 아우슈비츠의 참극을 비롯해 유사 이래 끊임없이 자행돼온 대량살육, 또 현재 당면해있는 인류절멸의 핵전쟁 위기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신은 있는가?’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절대전능이자 절대선의 신을 믿는다면 의문은 더 확장된다. ‘그렇다면 신이 악이 존재하는 세상을 창조할 리는 없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당장 현실에서 저질러지는 수많은 악을 보고있지 않은가? 만약에 악 또한 신의 창조물이라면 신은 과연 이 세상의 악에 대해 얼마만큼 묵인했고 얼마만큼 책임이 있는 것인가?
그러면 악마는 신의 대리인인가, 또는 적인가?’ 이 꼬리 무는 의문에 대해 무신론자들은 간단하게 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그러나 신을 부정하는 것은 우리가 딛고 선 희망의 세계를 일거에 허무는 것이므로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악, 혹은 악의 원리를 인격화한 악마를 파악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신의 실체와 본질을 규명해내는 일이며, 신으로 상징되는 희망의 논거를 현실세계에서 찾아내는 작업인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의 저명한 역사신학자인 제프리 러셀의 4부작 ‘악의 역사’는 바로 이런 지평에서 그가 20여년에 걸쳐 끈질기게 악의 문제를 천착해온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그는 악을 연구하는데 있어 개념적이고 사변적인 방식을 채택하지 않는다. 장구한 인류사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상된 악, 또는 악마의 구체적인 모습을 집요하게 좇아 재현해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 ‘1권-데블, 2권-사탄, 3권-루시퍼, 4권-메피스토펠레스’의 구성은 각기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의 고대세계에서의 1세기 초기 기독교까지’ ‘기독교 전통의 주류가 형성된 5세기까지’ ‘17세기까지의 중세기독교 세계까지’, 마지막으로 ‘종교개혁과 합리주의의 대두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시대적 구분을 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셀은 종교, 신화학, 역사학, 철학, 민속학, 문학, 미술, 심지어 대중예술에까지 이르는 방대한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고대와 중세, 현대에 이르는 통사적 고찰과 해박한 분석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독자들을 진지하고도 깊은 사념의 세계로 이끈다.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 이 책을 읽고 악을 어떻게 판단할 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저자는 숨가쁘게 역사를 되밟아온 뒤에 신학자다운 나름의 견해를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악마는 신이 창조한 우주의 한 측면으로, 신이 지닌 의지의 산물로 봐야 하며, 신은 우리에게 모든 힘을 다해 그와 맞서 싸울 것을 바란다는 것이다.
요컨대 핵무기를 더 강한 핵무기로 제압할 수 없듯(이 책은 냉전이 극성기이던 1980년대 이전에 차례로 씌어졌다), 부정을 더 강한 부정으로 물리칠 수는 없으며, 오히려 부정은 긍정으로, 악은 선으로, 증오는 사랑으로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의 문제를 다루는 만큼 책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음울하다. 그러나 러셀은 말미에 에세이와도 같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비관적 정조를 일거에 걷어내고 희망의 빛을 제시한다.
‘나는 겨울 밤 창문을 통해 별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불러본다. 내가 그 별들을 알고 있는 것은 이름을 알아서가 아니라 그 별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그들의 존재와 나의 존재가 공유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악(혹은 악마)은 어떤 식으로 존재하든 결함을 가진 비실체이며, 부정된 부정이며, 사랑의 빛으로 파열되는 무의미인 것이다.’
만만치 않은 분량에다 다소 현학적이고 난해하기도 하지만 세계를 좀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하고, 암울한 문명의 미래 전망에서 희망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일독할만한 책이다.
이준희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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