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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유머는 우리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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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유머는 우리의 독

입력
2006.03.2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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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담배를 피우려면 숨을 내쉬지 마세요.” 공공건물에 이런 말을 써 놓으면 금연 스티커를 곳곳에 붙이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손님은 테라스로 나가십시오.”-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기내방송이다. 이 항공사에 전화를 걸면 “담당자와 30초 이상 연결되지 않거든 8번을 누르세요. 그렇다고 빨리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기분은 좋아질 겁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온다고 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카운터로 갖고 오세요. 미소로 바꿔 드리겠습니다”라고 써 붙인 어느 음식점과 비슷하다.

●유머경영은 이제 세계적 상식

비행기 바깥에 무슨 테라스가 있어? 나가서 죽으라는 거 아냐? 음식 대신 미소를 준다고? 그걸 어떻게 먹어? 이렇게만 생각하는 ‘세상의 바보들’(움베르토 에코의 책)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유머가 없는 개인이나 기업이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돼 버렸다. 실제로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이런 유머경영을 앞세워 30년 넘게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한국을 다시 다녀간 미국의 경영전문회사 CEO 진수테리는 웃다가 성공한 여성이다. 미국인과 결혼해 접시닦이로 일을 시작한 그는 미국의 100대 여성기업인 중 하나다. 샌프란시스코 시에는 진수테리의 날(7월 10일)도 있다. 전문연설가라는 직함을 더 선호하는 그는 펀(fun)경영을 강연하고 다닌다.

갑자기 사망한 개그맨 김형곤씨도 유머의 중요성을 잘 알려 주었다. 그는 웃음의 날 제정, 유머 넘치는 대통령 등 ‘웃음제안 10계명’을 남겼다. ‘사랑의 가정연구소’로 통하는 사회단체 하이패밀리의 대표 송길원 목사도 ‘유머, 세상을 내 편으로 만드는 힘’이라는 책에서 유머 데이를 제안했다. 그는 특히 13일의 금요일을 빅 유머 데이로 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잘 웃지 않으며, 조금 높아지면 유머나 개그를 체면 깎이는 광대짓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더 큰 문제는 유머 속의 독을 모르는 일이다.

원래 유머에는 일정한 공격성이 내포돼 있고 웃음은 우월의식을 부추기는 데서 시작되지만, 이런 속성을 잘 모르고 우스갯소리를 했다가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한나라당의 대변인이 최근 한국야구팀의 선전을 재미있게 논평한다고 “외교적으로 상대하기 어려운 나라들만 이긴 게 정부의 지시였는지 의혹이 일고 있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유머 비즈니스’라는 책(밥 로스 저)에는 유머의 AT&T원칙이 나온다. 내용의 타당성(Appropriate), 시기의 적절성(Timely), 듣는 이들의 취향과 특성에 맞을 것(Tasteful) 등이다. “스커트와 스피치는 짧을수록 좋다니 그만하겠습니다”하고 서둘러 연설을 마쳤다고 치자.

어떤 남자들은 재치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떤 여자들은 성적 농담에 얼굴을 찌푸릴 것이다. 비리혐의로 수사받던 남상국 대우건설 전 사장은 2004년 3월 한강에 투신자살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대우건설의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의 별 볼 일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라고 말한 지 불과 2시간여 만이었다. 유머처럼 한 말이 당사자에게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던 것이다.

최근 미국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 그리다이언 클럽(Gridiron Club)의 정기모임이 열렸다. 춤과 노래, 재담을 통한 정치 풍자가 주내용인 만찬의 올해 안주감은 총기 오발사고를 낸 체니 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체니를 웃음거리로 만들면서도 그스르되 태우지 않는다(Singe, but never burn)는 원칙을 지켰다.

●그스르되 태우지 않도록 해야

높은 사람일수록 유머를 잘 해야 한다. 잘 한다는 말은 양과 질 모두에 해당된다. 유머는 따뜻한 애정이며 신뢰다. 인간은 유머를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지만, 거꾸로 신뢰 받는 인물이라야 왜곡 없이 유머가 받아들여진다. 유머는 힘이면서 독이다. 노 대통령이 어제 국민과의 인터넷대화를 하면서 ‘유머사고’를 내지 않은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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