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탤런트 유준상씨가 한 연예프로그램에서 아내가 딸을 출산한다면 ‘산슬’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산슬’에 유씨 성을 붙이면 바로 중국집 메뉴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유산슬’이다.
●유산슬? 알고보니 려우싼쓰
이 사랑스러운 유산슬이라는 요리가 한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면, 중국 본토에도 분명 유산슬이라는 이름의 요리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이 발동해 한국어 사전에서 유산슬이라는 한자어를 눈이 빠지도록 찾아보았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메이드 인 차이나’의 명예를 걸고 말씀 드리자면 필자는 이런 아리송한 요리 명칭을 중국 본토든 아니면 대만, 홍콩이든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유산슬을 현장 체험한 결과 유산슬은 중국의 유삼사(유三絲), 본토 발음으로는 ‘려우 싼 쓰’라는 요리로 어린 시절 즐겨 먹던 고향 음식이었다. 그렇다면 ‘려우 싼 쓰’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유산슬로 변했을까.
유산슬은 가늘게 채 썬 세 가지 식재료를 기름과 녹말가루를 넣어 볶아낸 요리이다. 따라서 ‘볶는다’는 뜻의 유(유), ‘세가지 식재료’를 의미하는 삼(三), ‘가늘게 썬다’는 의미의 사(絲)가 합쳐진 ‘려우 싼 쓰’와 한국의 유산슬은 완벽히 같은 DNA를 가진 셈이다.
화교 주방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려우 싼 쓰’가 중국어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 손님들의 귀에 ‘유산슬’로 들렸던 것이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오늘날까지 별 탈 없이 죽 사용되어 왔다니 실로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산슬의 경우와 같이 이상하게 한글 표음된 중국 요리 이름은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자장면은 짜쨩?x(炸醬麵), 짬뽕은 짜빤(雜拌), 깐풍기는 깐펑찌(乾烹鷄), 라조기는 라쯔찌(辣子鷄), 기스면은 찌쓰?x(鷄絲麵), 탕수육은 탕추러우(糖醋肉) 등으로 발음을 표기해야 원어 발음에 더 충실한 표기가 된다.
기왕에 중국음식점 얘기가 나왔으니 ‘짱깨’라는 속어에 대해서도 풀이해 보자.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이 말하는 소위 짱깨라는 용어는 약간의 비하하는 말투가 섞인 농담이다.
그러나 이 짱깨라는 용어의 원어는 원래 장궤(掌櫃)라는 말이다. 장(掌)은 ‘손바닥, 일을 다루는 솜씨, 수완’등을 의미하고 궤(櫃)는 ‘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장궤라는 용어는 한마디로 계산대에서 ‘돈 통을 휘어잡는 사장 혹은 지배인’이라는 뜻이다.
●'베이징'도 훗날 또 혼란 우려
이처럼 유산슬이나 짱깨 등의 한국식 중국어는 한국인도 중국인도 경험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의미와 발음을 유추하기 어려운 아리송한 용어가 된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과연 최근에 와서 대세를 이루고 있는, 북경(北京)을 ‘베이징’으로 한글 표음하는 한국어문규정의 중국 외래어 표기법이 먼 훗날 또 어떠한 인식의 혼란을 가져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릴 수가 없다. 과연 필자의 생각이 노파심일까.
추이진단ㆍ대진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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