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는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우치고도 설법을 주저한 적이 있다. 인간의 언어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궁극의 진리를 온전하게 일러주기가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때 “세존이 설법을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무명과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범천(부처를 보호하는 신)이 권청했고, 부처는 설법을 결심한다. “내가 이제 중생을 위해 감로의 문을 여노라. 귀 있는 자는 듣고 낡은 믿음을 버려라.”
참다운 진리는 무언(無言)이라고 하나, 필부필부(匹夫匹婦) 우리들은 말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다. 고승의 훌륭한 말씀을 기다리는 것도, 그 속에서 삶의 지침이 될 진리를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근ㆍ현대 한국 불교에 큰 족적을 남긴 고승 33인의 법어집 ‘쥐가 고양이 밥을 먹다’가 나왔다. 불교신문이 창간 46년을 기념해 엮은 것으로, 현대인의 삶에 가르침이 될 글 45편을 모았다. 효봉 경봉 자운 청화 청담 월하 법전 지관 등 이미 입적한 스님과 생존 스님이 망라됐다.
제목은 전강(1898~1975) 스님이 용주사 중앙선원 조실로 있던 1972년 행한 법문에서 따왔다.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견성(見性)한 도리가 쥐가 고양이 밥을 먹은 것이라 했으니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쥐란 고양이 밥이니 제가 저를 먹어버렸다는 말이다…내가 나를 먹어버렸다. 일체의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 내 마음을 내가 먹어버렸으니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공(空)했으니 모든 경계도 공했다…”
통도사 극락선원 조실을 지낸 경봉(1892~1982) 스님은 “법문은 우리가 일상 생활 하는데 다 있으며, 일상 생활 하는 밖에서 진리를 찾지 말고 불교를 찾지 말아라”고 일러준다. 스님은 “물질과 사람을 초월한 정신을 가지고 있어야 사바세계를 무대로 잡고 연극 한바탕을 잘하는 사람이다”며 올바른 정신을 강조한다.
조계종 부종정과 총무원장을 지낸 금오(1896~1968) 스님은 마음을 힘주어 말한다. “일체 만법의 근원은 마음이며 마음에서 일체가 나오지 않음이 없나니…마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는 것이며, 또 부처 밖에 마음이 별달리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스님이기에 “본 마음만 보면 만사를 해결해 마치는 것이니, 만사와 만 가지 이치가 모두 마음이 움직이는 사이에 있다”고 일러준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개혁회의 의장을 역임한 석주(1909~2004) 스님은 중생은 “악업(惡業)을 지어 악보(惡報)가 몸으로 나타난다”며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악업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몸으로 하는 살생, 도둑질, 음행 등의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탐심, 진심, 치심 등으로 일어나는 행위가 업장(業障)이 되는 것이며, 그 업장에서 벗어나려면 잘못된 허물을 늘 참회하고 선업을 지어야 하며 본성을 밝히는 마음의 공부를 잠시도 쉬지 말고 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 조계종 종정 월하(1915~2003) 스님도 공부에 대한 법어를 잊지 않았다. “몸 안팎에 꽉 찬 두루 통하는 의단(疑團)이라야만 의단이 깨지지 않고 맹세코 마음을 놓지 아니하여야 이를 일러 공부라 할 만하다…공부인은 어디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
어지럽고 힘든 사회. 이 세상을 사는 자세는 효봉(1888~1966) 스님이 40년 전 들려준 법어 속에 이미 들어있었다. “세존이 세상 일을 등져 현실을 도피하지 않았음과 같이 불자는 마땅히 현실과 맞서 이를 극복해야 한다…중생을 외면하고 어찌 성불을 바라리오.”
박광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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