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 라이프 - 만화 사업가 3남매 정연훈·희문·소영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 라이프 - 만화 사업가 3남매 정연훈·희문·소영씨

입력
2006.03.24 00:07
0 0

만화로 똘똘 뭉친 3남매가 있다. 정연훈(36)ㆍ희운(34)ㆍ소영(31). 3남매가 의기투합해 만화온라인사이트 ‘이코믹스 미디어(Ecomixmedia, www.ecomix.co.kr)’를 만든 지 올해로 8년째, 지난 1월엔 그 범위를 미국으로까지 확대시켰다. 우리 만화를 영어로 번역해 영어문화권에 알리는 작업이다.

이유는 딱 한가지, 한국을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들은 색깔 있는 한국 만화를 영화로 만들어 할리우드에 올리겠다는 장기계획을 갖고 있다. ‘만화 한류’가 그들의 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들 셋 중 어느 누구도 만화 마니아는 아니었다. 둘째 희운씨는 어릴 때 수호지를 좋아하던 아버지를 따라 처음 만화방이란 곳을 구경했고 중ㆍ고등학교때 몇 번 친구들과 우르르 가서 만화책을 봤던 게 전부다.

막내 소영씨도 어릴 땐 만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그들이 어떻게 ‘만화’사업을 감히(?) 시작하게 됐을까. 뒤늦게 만화에 빠진 30대 남매 희운씨와 소영씨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그들의 회사로 찾아가 만났다. 장남 연훈씨는 작년 가을에 설립한 뉴욕 지사에 근무중이었다.

“만화의 매력이요? 칸과 칸 사이에 있는 공간이에요. 그 곳을 통해 사람의 상상력은 정지된 그림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죠. 아주 묘해요.”

희운씨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아직도 만화를 잘 모른다는 그들은 만화이야기가 시작되자 만화가와 만화책 제목을 줄줄 읊어대며 작가의 내면까지 파고들었다.

만화는 그저 꼬마들을 웃기려는 수준이 아니라는 ‘문학’의 경지라는 게 그들이 내린 결론.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와는 달리 열악한 국내 만화시장 때문에 여태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소재와 표현방식이 다양한 우리 만화의 질이 결코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정씨 가족은 1990년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갔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소영씨는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 국가인지도 모르는 친구들로부터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학창시절 내내 주변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주는 건 그의 임무였다. 공연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대학을 마치고 외국문화를 한국에 들여오는 일을 했다. 미국의 전형적인 코믹 퍼포먼스나 인형극을 가져와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그 일을 5년쯤 하고 나니 이젠 거꾸로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미국에 보여줘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만화’라는 예술을 찾았죠.”

서울에 온라인 만화사이트를 만든 건 대학을 마치고 먼저 한국으로 돌아온 연훈씨와 희운씨였다. 직원 한명으로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죽어가는 만화산업을 일으키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막내 동생과는 달리 이들은 처음부터 세계시장 진출이 목표였다. 일단 한국에서 기반을 잡는 게 1차 목표였고 이는 순로롭게 실현됐다.

현재 회원이 100만 명에 육박하는 이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만화는 6,000종에 이르고 회사 직원도 20여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해외 진출이 준비된 이들은 2004년 말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공연 기획과 제작 일을 주로 하던 소영씨에게 미국출판을 제안했다. 흔쾌히 이를 받아들인 소영씨는 그때부터 오빠들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일은 생각보다 순탄했어요. 작은오빠가 워낙 그 쪽 정보에 밝았기 때문에 미국 출판사를 설득하는 것도 쉬웠지요.”

소영씨도 아무 인맥 없이 공연기획 계약을 5년째 해왔던 터라 그들에게 사업을 제안하고 설득 하는 일에 능했다. 오히려 힘들었던 것은 소영씨가 뉴욕에서 직접 발품을 팔아야했던 시장 조사였다. 몇 달간 서점과 출판사들을 돌며 가격대를 조사하고 인쇄방법이나 잘 팔리는 만화 등을 파악했다. 육체적으로 힘은 들었지만 일이 척척 진행되자 힘이 솟았다.

기본 준비를 거의 마친 지난 가을, 마침내 뉴욕 지사를 설립했다. 번역과 디자인, 편집을 맞을 현지인 20여 명을 고용했고 소영씨가 총괄 책임자가 됐다. 그리고 지난 1월, 김진태씨의 ‘왕십리 종합병원’, 강도하씨의 ‘위대한 캐츠비’, 말리씨의 ‘도깨비 신부’ 등 10종이 영어로 번역돼 미국 뉴욕 대형서점 1,000여 곳에 깔렸다.

“반응은 즉각적이었어요. 일단 뉴욕 지사에 근무하는 미국인 직원들이 작품성을 인정해주더군요. 고등학교 남학생들의 동성애나 무속신앙이라는 다양한 소재도 재미있어하고요. 곧 한국 만화도 영화나 드라마처럼 한류바람을 몰게 될 겁니다.”

영어로 된 온라인 사이트도 개설했다. 아직 초기라 15종 정도이지만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를 할 계획이고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등 전세계로 계속 넓혀나갈 생각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훌륭한 만화 작품들을 세계 곳곳에 소개할 겁니다. 지금까지 대중문화 속에서 항상 다른 매체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요즘 만화는 카툰 기법과 사실화 기법의 결합돼 더 큰 호소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죠.”

앞으로는 한국문화나 정서가 더 많이 녹아 든 만화도 소개할 거란다.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그들은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1월부터 한국에 근무하던 연훈씨가 얼마전 미국 지사로 갔고 그곳을 총괄하던 소영씨는 4월부터 만화를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만드는 작업에 뛰어든다.

“이미 만화가 영화가 된 사례들은 많잖아요. 우리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져 할리우드에 걸리는 그날까지 우리 셋,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파이팅’을 외치는 희운ㆍ소영씨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