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신임 한국은행 총재 내정자는 ‘선비’로 통한다. 심지가 굳고 외압에 굴하지 않는 성격 때문이다.
1990년대 초 투신사에 한은 특융을 단행할 당시 자금부 부부장으로 재직했던 이 내정자가 “불합리한 처사”라며 결제에 반발한 일화는 유명하다.
한은 직원들의 ‘적도 아군도 없다’는 그에 대한 평가도 이리저리 학맥을 걸칠 수 없었던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원리원칙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 왔다는 반증이다.
한은의 핵심요직인 조사국장 시절 야근하는 법이 없이 매일 오후 6시에 어김없이 퇴근한 것은 아직도 직원들 사이에 많이 회자되고 있다.
일부 직원들 사이에 ‘소신이 지나치다’는 평이 돌기도 했으나 업무처리가 완벽했기 때문에 이후 오히려 후배들이 존경하게 됐다는 것. 이러한 성품 때문에 90년대 중반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경남 통영 출신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이 총재는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상대에 수석 입학했다. 성격이나 성장 환경까지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하다는 평가도 많다.
노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라는 점이 이번 인사에 크게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부산상고이기 때문에 역차별을 받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13년 만에 처음으로 한은 내부에서 총재가 나왔다는 데 대해 한은에서는 중앙은행 독립성도 높아질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박승 한은 총재가 임기 초반 정부의 통화정책 간섭에 마음 고생을 하며, 일부 휘둘리기도 했던 것과 같은 일은 일어날 가능성은 크게 줄었다는 것.
그러나 그만큼 정부와의 관계에서 미묘한 긴장관계도 예상된다. 정부는 경기진작을 위해 어느 정도 통화정책을 희생시키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한은은 물가안정을 위해 이에 맞서는 것을 가장 큰 사명으로 여겨왔다. 때문에 재경부와 한은간 알력이 수면 아래에서 수면 위로 불거지면서 시장에 혼란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 내정자가 2004년 초부터 부총재(당연직 금통위원)로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왔기 때문에 통화정책의 기본 틀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이다.
이 내정자는 시장에서 ‘매파’, 즉 선제적으로 정책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과단성 있게 금리인상 기조를 펼쳐나갈 인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40년간 한은에 몸담은 이 내정자의 경력과 스타일을 감안할 때 시장과 호흡을 맞추는 데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동부증권 박혁수 선임연구원은 “이 내정자가 한은 출신이고,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시장이 이 내정자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게 흠이 될 수도 있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 동안 한은 독립성이 훼손된 데는 한은 스스로 독립성을 주장할 만큼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때문에 한은 위상을 높이기 위한 내부 개혁이 13년 만의 한은 출신 총재인 이 내정자의 최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병률 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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