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짜증나는 야구 경기였다. 같은 팀을 세 번 연달아 격파해야만 결승에 진출할 수밖에 없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운영방식, 정말 짜증났다. 일본에 진 것이 짜증난 것이 아니라 운영방식이 짜증났다. 반면 일본은 같은 팀에 연속으로 두 번 지고도 마지막 한 번을 이겨서 결승에 진출하는 억지 행운을 얻었다.
확률적으로 실력이 비슷한 팀을 상대로 세 번을 연속 이긴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공정한 대회라면 이러한 경우의 수가 나오지 않도록 처음부터 고심하여 운영방식을 만든다.
●미국에 유리한 게임의 룰
그런데 이번 WBC의 대회 진행은 오히려 처음부터 이렇게 이상한 대진이 나오도록 고심하여 진행방식을 만든 흔적이 너무나도 역력하다. 그 이유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린 미국의 과도한 욕심 때문이다.
국민적 관심이 되는 미국의 스포츠 경기가 대부분 다 그렇지만, WBC 역시 막대한 돈벌이와 관련된 매우 자본주의적인 대회이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의 체면을 살리면서 미국의 관중 수와 TV 시청률을 높이고, 그것으로 TV중계료, 광고수입, 또 기타 관련 상품의 판매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이 준결승과 결승에 진출하여야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수익을 기대하고 대진표가 처음부터 미국의 준결승과 결승 진출에 유리하게 짜여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상대하기 편한 팀들을 미국과 같은 조에 묶었고, 다시 미국이 결승전에 진출하기 유리하도록 같은 조 내의 1, 2위 간에 준결승을 치르도록 하는 엄청나게 이상한 경기 운영방식이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경기 운영방식이 더욱 빛(?)을 본 것은 미국 심판의 오심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번 WBC에서 미국이 불리할 때 이러한 오심이 몇 차례 나왔다는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필자가 야구 전문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번 WBC 대회 운영방식에 관하여 흥분하고 있는 이유는 야구경기 뿐만이 아니라 한미 FTA에 있어서도 비슷한 운영방식이 생길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대회 운영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미 FTA의 제도와 규칙, 그리고 불공정거래에 대한 판정 등이 이번 WBC 대회와 같이 불공정하게 만들어지고 행해진다면 한국은 매일같이 미국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매우 불리한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미 FTA에 있어서 WBC와 유사한 대회 운영방식은 곧 시장과 개방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논리 하에 미국에 유리한 경쟁환경을 체계적인 방어조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정부와 보수 언론은 경제는 시장에 맡기기만 하면 되고 개방을 통하여 국제시장에서 경쟁을 하기만 하면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시장 뒤에 숨어 있는 ‘대회 운영방식’을 완전히 숨겨버리는 정치적 주장이다.
왜냐하면 시장이라는 경쟁환경은 무수한 제도와 규칙, 그리고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고, 서로 유리한 운영방식을 채택하기 위하여 강하게 협상하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자국에게 유리한 제도와 표준을 밀어붙이기 위하여 다양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개방 득실 철저히 따져 협상을
그런데 우리는 안이하게 미국이 월등히 강한, 그리고 또 한국의 미래에 너무나도 중요한 금융, 서비스, 교육, 문화 산업을 먼저 개방하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무책임하게 처음부터 약자들만 모아놓고 미국이 한 조를 짠 WBC 대회 운영방식과 다름이 없는 운영방식을 받아들이자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은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앞으로 한미 FTA의 경제적인 득실을 철저히 따져보고, 공정한 국민적 합의절차를 거쳐, 개방의 수준과 범위, 보상체계, 그리고 협상의 시간표를 전략적으로 고려하여 공정한 한미 FTA의 운영방식을 협상하여야 할 것이다. 무리하게 서둘러서 대회에 참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이근ㆍ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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