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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보상'과 '원칙'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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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보상'과 '원칙'사이

입력
2006.03.2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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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교나 대학 인근 패스트 푸드점 등에서는 심드렁한 표정의 흑인 청년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제복 차림의 모병관들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이후 이들의 노고가 이만저만 아니다.

계약 직후 입금되는 몇 만 달러의 연봉과 시민권 부여, 상급학교 진학보장 등등. 앨라배머의 백인 청년이나 라틴과 아시아계 이민 자녀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미끼이지만 좀처럼 입질이 없다. 6개월 동안 고작 4명의 승낙을 받았다거나 실적 나쁜 모병관이 지원자의 전과나 병력을 속였다가 기소됐다는 얘기 등이 언론을 타고 있다.

달랑 징집 영장으로 청년을 군대로 불러내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거액의 연봉이 아니어도, 취업 보장의 혜택이 없어도 기꺼이 군으로 달려간다.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했다는 자긍심이 2년여의 세월을 저당하는 데 따른 유일한 보상인데도 말이다.

이런 우리의 청년들을 묶는 끈은 형평성이다. 부자 부모를 두었든 농사꾼의 아들이든, 능력이 출중하든 그저 그렇든,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데 차별을 둘 수 없다는 원칙이 국민개병제의 골간을 이룬다. 병역 특례 조치를 법으로 규정, 군 소집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평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의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 신화를 이룬 대표팀에 병역특례를 주기로 한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합의는 두고두고 씁쓸함을 안겨준다. 물론 홈런 한방으로, 그림 같은 수비로 국위를 선양한 공이 직접 국토를 지킴으로써 국민을 안심시키는 일에 뒤지지 않는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우리는 그 만큼 대표팀의 승리 행진에 열광했다.

문제는 그런 결정의 졸속성에 있다. 야구 대표팀에 대한 병역 특례는 처음부터 검토된 게 아니었다. 한국의 긍지를 만방에 확인시켰다는 명분이 강조됐지만 국민의 뜨거운 열기에 편승하는 정치권의 얇은 술수라는 비판이 뒤를 이을 만큼 결정 과정은 즉흥적이었다. 그런 명분이라면 대회가 마무리된 뒤 차분하게 공과를 따져 결정하는 게 오히려 합당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병역 특례를 ‘보상’과 치환하는 발상의 유치함이다. 국민의 마음을 한순간 기쁘게 했다고 해서 법까지 고쳐가며 예정 없는 선물을 허락한다면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하고 군에 가있는 젊은이들은 무엇으로 위로한다는 것인가.

현재 국회 국방위에는 18건의 병역특례안이 계류돼 있다.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의과대학원생에게도, 올림피아드 입상자에게도 대체 복무의 기회를 주자는 안들이다. 한류 스타도 특례를 요구하고 프로 게이머까지 군대 가는 대신 국위를 선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이 인원이 2만 명에 이른다. 원칙이 흔들릴수록, 예외가 잦을수록 징병제의 골간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워싱턴에서 근무했을 때 본 마이클 무어 감독의 반전(反戰) 영화 ‘화씨 9/11’에는 무어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의원들에게 입대 지원서를 내미는 장면이 나온다. “전쟁에 찬성하신다니 의원님의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세요”라는 무어의 채근에 의원들은 당황한 듯 발걸음을 돌린다.

돈없고 빽없는 청년만 군대에 가야 하느냐는 무어식 표현법이다. 그래서 이렇게 묻고 싶다. 운동 못하고, 공부 못하는 사람만 군대에 가야 합니까. 원칙 없는 특례 혜택으로 묵묵히 군 복무를 하고 있는, 또 그렇게 할 젊은이들을 더 이상 우롱해서는 안된다.

김승일 사회부장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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