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병역은 천민을 제외한 16~60세의 모든 남자들에게 부과되는 개병제(皆兵制)였다. 하지만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 전ㆍ현직 관료나 성균관 유생 등에 대해 특례를 인정한 것이 잘못이었다. 양반은 으레 군역을 맡지 않는 관행이 굳어진 것이다. 임진란 이후에는 대규모 상비군의 필요성이 줄면서 정기적으로 군포(軍布) 2필을 바치는 것으로 군역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때도 ‘능력’ 있는 자들은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바람에, 조정은 부족한 군포의 양을 채우기 위해 힘없는 양민들을 악랄한 방법으로 쥐어짜댔다.
▦ 사망한 사람의 가족에게 지우는 백골징포(白骨徵布), 16세 미만의 어린아이한테도 부과하는 황구첨정(黃口簽丁), 대상자가 달아나면 친척이나 이웃에까지 연대책임을 씌우는 족징(族徵), 인징(人徵) 따위가 그 것이었다. 영조 때에 이르러 비로소 군역의 공정을 기하고 부담을 줄여준답시고 균역법을 시행했으나 관행이 전혀 바뀌지 않은 데다, 군역을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양반 인구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또 문제가 됐다. 요컨대 당시 국방의무는 힘도, 돈도, 재주조차 없는 못난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화해 있었던 것이다.
▦ 원래 체육.예능인에 대한 병역특례는 한창 때 군 복무의 공백으로 출중한 기량을 잃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세계챔피언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무하마드 알리가 병역기피로 운동을 한때 접었다가 다시 기량을 회복해 ‘킨샤사의 기적’을 이룰 때까지는 무려 7년이나 걸렸다. 이도 알리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병역법 시행령에 특례대상 스포츠대회와 등급을 명시한 것은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 국가가 보호할 만한 기량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지, 국위선양 등에 대한 보상 의미는 아닌 것이다.
▦ 이미 발표된 야구대표 선수들의 병역면제를 이제 와 뒤집을 건 아니나, 병역면제를 보상책으로 자주 쓰는 건 국방의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국민을 모독하는 일이다. 이런 식이면 연예, 컴퓨터게임 등 온갖 분야 종사자들의 요구를 외면할 논리도 군색하다. 차라리 병역 이행 중에도 이들이 기량을 닦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강구하되, 그에 따른 책임도 지우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으면 병역은 조선시대처럼 별 능력 없는 이들이나 감수해야 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된다. 국민적 의무의 평등성을 훼손하는 일은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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