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중섭(1916~1956)이 떠난 지 올해로 만 50년이다. 빈한하게 살았고 끝내 외로웠던 그의 생애 마지막 9년을 가까이서 지켜본 김광림(77) 시인이 고인의 삶과 예술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 화가 이중섭 생각’(다시 발행)이다.
시인은 책에, 만년의 이중섭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에 젖어 ‘내 그림은 모두 가짜’라며, 그림을 불살라 달라고 청했던 비화를 소개했다.
재료가 없어 그리고싶은 것을 제대로 못 그린 데 대한 자학의 탄식이었을 것이다. 알려진 바처럼, 이중섭은 1955년 미도파백화점 전시회와 대구 미 공보관에서 연 개인전 결과에 실망해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 무렵이다. “중섭은 개인전에 전시되지 않은 대부분의 미완성 작품과 은박지 그림, 소품 등 한 뭉텅이를 아무렇게나 말아 가지고 불태워 달라기에 그러겠다고 받아가지고 숙소로 돌아왔다”며 “나는 이 그림을 고스란히 보관했다가 이틀 후 중섭과 함께 묵고 있는 태응(작가 최태응)의 요청으로 반환했다.”(68쪽)
두 사람은 1947년 원산에서 해방기념 시집 ‘응향’에 참여한 시인(당시 17세)과 표지 화가(당시 30세)라는 인연으로 만나 화가가 작고할 때까지 교유했다.
시인은 군 장교 복무시절 가난한 화가의 요청에 따라 양담배 은박지를 모아 전한다. “손바닥만한 스페이스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을 부러워했고, 그래서 그림을 시처럼 그린 화가였다고 시인은 회고한다.
그렇게 그려진 은박지 그림들을 둘러싼 근년의 위작 논쟁을 떠올리며 시인은 “내가 그의 그림을 불사르지 않고 세상에 남아돌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46~4쪽)고 적었다. 그는 “이 화백이 그림 그릴 데가 없어 책 표지나 장판지에까지 손대고 있을 때 내가 모아다 준 C레이션 속의 ‘럭키스트라이크’ 담배갑 은박지가 진짜”이며 “56년 이후의 것이면 가짜”라고 주장했다.
시인의 이중섭에 대한 회고는 자연스레 자신의 북녘 고향(함남 원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고향에서 그는 해방 직후 고인에게서 생선 광주리를 이고 바람에 치마폭을 휘날리며 걷는 두 여인네의 모습을 그린 수채화 한 점을 얻어 고향 집에 걸어둔 채 피난을 온 모양이다.
시인은 그 그림이야말로 “이중섭이 말하고 싶었던 그의 진짜 그림이 아니었”을까 회고하며, 고인의 예술에의 열정과 근년의 소송사태에 대한 시인의 혐오감을 내보이기도 한다.
화가의 삶과 그림에서 모티프를 얻어 쓴 시인의 시와 글, 고인의 그림 등이 함께 묶인 책은 화첩을 겸한 화가의 평전으로도, 시인의 에세이로도 읽힌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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