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인선 구도에 새로운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그 동안 새 총리 후보로 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이 유력하게 거명됐으나,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20일 4~5배수 총리 후보군을 놓고 백지 상태에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특히 정치인과 여성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묘한 언급을 했다. '비정치인 총리 지명'이라는 기존 흐름과는 다른 시사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김병준 실장 카드도 살아 있고 여당 인사도 새로 후보에 추가됐다"며 "노무현 대통령의 고심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총리로 지명될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실장이 굳이 '총리 후보 원점 재검토'를 밝힌 것은 일단 기존 유력 후보대신 새로운 대안을 찾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치인과 여성을 조합하면 여성 총리론이 나오는 것 아니냐"면서 "추론이지만 그런 맥락에서 보면 열린우리당 한명숙 의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 의원은 여성ㆍ환경부 장관을 지내 행정을 알고 여당 소속이지만 정치색이 별로 없어 나름대로 경쟁력 있는 카드로 평가 받고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총리서리가 국회 인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의원이 낙점된다면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등장하게 된다. 첫 여성 총리는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데다 지방선거에서도 여당에 긍정적 기여를 할 수 있다. 더욱이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면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한 의원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 교수가 과거 통혁당 사건으로 13년간 복역한 점이 부담이다. 야당이 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병준 실장은 노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도 깊이 공유하고 있으며 주요 정책의 산파역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3배수 안에 들어있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당 문희상 의원도 거명된다. 문 의원은 화합형인데다 정치적 경륜에 행정 능력까지 겸비한 것으로 평가되지만 당 의장과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코드 인사' '선거 영향'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다른 차원에서 보면, 백지 검토 방침은 인선 속도를 조절하면서 야당과 국민 여론의 추이를 보기 위한 '호흡 고르기' 측면도 있는 듯 하다.
여권의 고위인사는 "최근 여권 지지도가 오르고 있고 야당은 여러 악재를 맞고 있는데 굳이 반발을 초래할 후보를 지명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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