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종잡을 수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평소 적대시하던 미국에는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반면 같은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남측은 홀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자들의 개성공단 방문을 놓고 북측이 내린 엇갈린 결정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주한 미국대사관과 미 하원 관계자 등이 20일 미 당국자로는 처음으로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미 하원의 더글러스 앤더슨 전문위원과 주한 미 대사관 정무ㆍ경제 담당 서기관, 통역 등 4명은 이날 오전 개성공단을 방문해 현지 입주업체를 둘러본 뒤 오후 늦게 서울로 돌아왔다. 한국측 외교부, 통일부 당국자도 동행했다. 이번 방문은 “개성공단 현장에 직접 가보고 싶다”는 미국측 요청을 북측이 수용, 16일 초청장을 보내 성사됐다.
하지만 미국측에 초청장을 보낸 같은 날 북측은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3월말 개성공단 방문신청을 4월로 연기시켰다. 25일부터 시작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이유였다.
북측이 미 행정부 관계자에게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한 의도는 복합적으로 보인다. 미국은 자국의 수출관련 규정 등을 통해 개성공단 생산 제품의 판로를 좌우하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장비 반출입을 막아왔다. 북한 이런 미국 당국자를 개성공단 현장으로 불러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려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북측은 이미 이 달 초 미국과 일본 등 외신기자 100여명의 개성공단 방문을 허용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을 방해하지 말라”는 간접 메시지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반면 미국측은 탐색에 목적을 둔 것으로 관측된다. 전문가들은 16일 이종석 장관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총동창회 조찬특강에서 “미국이 북한의 개방의지를 확인하고자 한다”고 한 것을 주목한다. 이 장관은 “한반도에 미묘한 정세변화의 흐름이 있다”며 미국이 북한을 평가하고 있다는 언급을 했다.
미 행정부내 보수진영은 그 동안 “개성공단 개발사업이 너무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는 불만이 많았다. 특히 달러화 위조 공방으로 6자회담도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은 직접 남북경협 현장을 확인, 향후 남북관계 견제 또는 지원의 논거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갖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북의 남측 홀대는 ‘이종석 장관 길들이기’, ‘비료와 식량 등 보다 많은 지원 확보’ 등이 목적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으나 어떤 쪽이든 상호 신뢰를 깨는 속 보이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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